얼마전 콜럼비아가 가공의 영화비평가 데이빗 매닝을 이용해 볼품 없는 자사 작품 ‘짐승’(Animal·사진)을 칭찬하는 글을 광고에 실었다가 들통이 나 큰 망신을 당한 바 있다. 콜럼비아는 현재 상영중인 두 영화 ‘짐승’과 ‘기사의 이야기’(A knight’s Tale) 외에 ‘투명인간’(Hollow man)과 ‘버티칼 리미트’(Vertical Limit) 등의 선전에도 매닝의 찬사를 사용한 것이 밝혀졌다.
이런 사실이 뉴스위크에 의해 폭로돼 국제적 망신을 하게 된 콜럼비아의 모회사 소니 엔터테인먼트는 자체조사 끝에 이같은 망발의 당사자인 매튜 크레이머 창조적 광고국 국장과 그의 상사 등 2명에 대해 30일간의 정직처분을 내렸다.
그런데 이런 스캔들이 터진지 얼마 안돼 콜럼비아가 지난 여름에는 멜 깁슨 주연의 ‘애국자’(The Patriot) TV 선전용으로 관객으로 위장시킨 자사의 두 남녀 직원이 영화를 "데이트 영화로 최고"라고 칭찬하는 모습을 방영한 것이 드러났다. 그러자 소니는 이번에는 앞으로 자사영화 TV 선전에서 관객 반응을 제외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한편 일단의 시민들은 최근 소니 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콜럼비아가 관객을 오도했다는 혐의로 집단소송을 제기, 콜럼비아의 망신살은 점입가경화 하고 있다.
콜럼비아가 사기를 치면서까지 영화 선전에 비평가의 글을 싣는 까닭은 영화 흥행에 비평가들의 반응이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수효과가 판을 치는 액션영화와 천박하기 짝이 없는 섹스 코미디 같은 10대용 영화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머지 영화들은 비평가들의 반응에 따라 흥행이 좌지우지된다고 해도 되겠다.
디즈니가 올 여름 최고의 히트작이 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던 ‘진주만’의 흥행성적이 예상치를 훨씬 밑도는 큰 이유중 하나도 이 영화가 거국적으로 부정적 반응을 받았기 때문이다.
’진주만’과 ‘툼 레이더’ 및 ‘암호 황새치’(Swordfish) 같은 메이저들의 대형 액션영화들은 그래도 비평가들의 반응에 덜 영향을 받는 편이다. 비평가들의 절대적 영향을 받는 영화들은 인디펜던트 영화 및 외국어 영화들.
이들 경우 비평가들의 반응이 부정적이면 그 영화의 장사는 망했다고 봐도 된다.
그래서 이런 영화들의 홍보대행 회사들이 LA타임스 등 굴지의 신문비평가를 대하는 태도는 때론 비굴할 정도로 알뜰하다. 군소 홍보회사들은 종종 시사회 후 비평가들의 반응을 전화로 물어 부정적일 경우 영화 상영을 미루거나 아예 포기할 때도 있다. 나도 매번 이들의 전화를 받는데 영화가 신통치 않을 경우 무슨 죄지은 사람처럼 "소리"까지 달아가며 대답해 주곤 한다.
영화의 질을 미리 알 수 없는 관객들로서는 비평가들의 의견에 거의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는데 문제는 비평가들의 자격과 질도 천차만별이라는데 있다. 요즘 상영 중인 졸작 코미디 ‘진화’(Evolution)에 실린 ‘올 여름 최대의 경이적 작품’이라는 평은 런치 라디오 네트웍의 스티브 레어볼리노라는 비평가가 한 말이다. 그러나 아마도 이 라디오 방송국과 스티브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스티브 빼놓고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형편없는 영화일수록 정체불명의 미디어 소속 비평가들의 칭찬을 싣게 마련인데 콜럼비아가 ‘짐승’ 광고에 매닝의 헛소리를 이용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비평가들의 대부분은 소위 정키티어(Junketeer)들. 정키티어는 메이저들이 베푸는 호화판 영화선전 파티 정키트의 단골손님들을 말한다. 이들은 대부분 와이어리스 매거진이니 인사이드 릴이니 하는 애매모호한 미디어의 이름 없는 기자들.
영화사들은 전국에서 이들을 LA와 뉴욕 같은 대도시로 불러들여(항공료 공짜) 고급 호텔(LA 경우 베벌리힐스의 포 시즌스)에 묵게 하면서 먹여주고 용돈(보통 일당 200달러)과 선물까지 제공하며 배우나 감독들과의 인터뷰를 마련해 준다. 이런 대접을 받고 부정적 평을 할 정키티어는 없게 마련.
영화사들은 종종 이들에게 회사가 필요한 인용구와 비평의 윤곽까지 넌지시 제공하고 있다. 또 메이저들은 때론 유명 비평가의 부정적 글을 따다가 거두절미하고 좋은 뜻의 단어 몇 개가 있는 중간부분을 선전에 이용하기도 해 글 쓴 당사자의 강한 항의를 받고 취소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번 콜럼비아의 해프닝은 관객을 속여서라도 장사를 해야겠다는 영화사들의 본성을 잘 보여준 경우다. 이로 인해 진짜 비평가들의 존재와 가치마저 상처를 입게 됐다. LA 영화비평가협회는 지난 9일 회의를 열고 콜럼비아 사태 문제를 논의한 끝에 그들의 우행에 무반응으로 대응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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