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에 걸렸다고 남은 인생 포기할 수 없어"
▶ 유방암 여성돕는 유방암 환자 김혜영 주부
아름다운 유방은 여성의 상징이다. 그렇다면 유방을 절제한 여자는 여성을 잃은 것일까? 유방암으로 한쪽 또는 양쪽 가슴을 다 도려내고 괴로워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유방암은 자궁암과 함께 여성들만이 걸리는 암이지만 수술 흔적이 겉으로 보이지 않는 자궁암과는 달리 유방암의 ‘잘라낸 후’의 후유증에 관해서는 아무도 말하려 하지 않는다.
당연히, 유방암 수술을 받고 난 여성들은 극심한 상실감에 시달린다. 투병할 때보다 오히려 절제하고 난 후 더 마음앓이가 심하다는 사람도 있고, 심한 경우 부부관계를 정상적으로 영위하지 못해 파경으로 치닫는 부부도 있다.
그런데 여기 유방암 발병을 "감기 걸린 것과 다르지 않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여성이 있다. 불과 10개월전 유방암 절제수술과 함께 복구수술을 받고 아직도 치료중인 김혜영(42)씨. 김씨는 "누구나 유방암에 걸릴 수 있으므로 특별한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단언하고, 그 사실을 증명해보이기 위해 용기있게 자신의 투병과정을 공개했다. 병상에서 일어나자마자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이 아름다운 여성의 투병기를 소개한다.
"처음엔 누구든 암같은 병에 안 걸릴 것 같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정말 믿을 수 없었어요. 그러나 분노하고 좌절하기보다 대범하게 맞서기로 결심하자 훨씬 견디기가 수월했어요"
남편과 함께 식당, 비디오 스토어등 4개의 큰 비즈니스를 운영하던 김혜영씨는 평소 활달하고 긍정적인 성격이 투병과 치료에 큰 도움이 됐다고 믿는다.
’죽으면 어떡하나’ 생각하자 사실 남편은 별로 걱정이 안 됐는데 외동딸 민경이(프리스카)가 걸렸다. 처음에는 딸에게 알리지 않았으나 항암치료를 시작하면 저절로 알게될 것이므로 알릴 방법을 찾았다. 다행히 딸애의 무용교사가 유방암에 걸렸다 나은 여자였다. 그녀를 찾아가니 "오늘 당장 프리스카에게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하라"는 조언을 들려주었다.
효과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세식구가 기차여행을 떠났다. 그때 민경이가 14세. 뭘하며 바삐 살았는지 온가족이 기차여행하기는 처음이었다. 차분하게 이야기했지만 예상했던대로 민경이는 울고불고 난리였다. "엄마를 정말 사랑한다면 울지말고 명랑하게 지내면서 항암치료를 도와달라"고 당부했고 민경이는 곧 안정을 찾았다. 무용교사와 그녀의 딸도 도와주었다.
민경이는 정말 애썼다. 언제나 밝은 표정이었고 농담까지 하면서 엄마의 아픔을 덜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주위 친구아이들의 엄마들로부터 듣는 소리는 딴판이었다. 민경이가 학교에서 "엄마가 불쌍하다"며 자주 운다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수술받은 부위보다 더 깊은 안쪽 가슴이 시려왔다. 민경이는 엄마의 부탁대로, 엄마가 힘들까봐, 엄마앞에서만 의식적으로 밝았던 것이다.
남편도 표현은 안했지만 딸처럼 힘들었던 것 같다. 혜영씨는 암 진단을 받은 후 남편 앞에서, 또 누구앞에서도 절대 울지 않았다. 울지 않은 것 뿐 아니라 뼈를 말리는 고통 속에서도 아픈 내색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남이 대신 해줄 수 있는 일이면 도와달라고 하겠지만 아픈건 누구도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일인데 왜 옆에 있는 사람을 힘들게 하겠어요"
그런 아내를 남편은 전재산을 날려서라도 최고의 의사진에게 치료받게 하겠다며 유방암에 가장 권위있는 UCLA로 데려갔다. 다행히 운영해온 비즈니스의 직원들과 함께 직장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던 행운으로 전재산을 날리지는 않았지만 비즈니스가 2개로 축소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내가 남편앞에서 의연했던 것처럼 남편도 내 앞에선 아무렇지도 않게 보였지만 많이 힘들었겠죠. 난 더 힘드니까 힘들어도 참으라고 농담하기도 했지만요"
투병중 육체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것은 항암치료였다. 수술이 차라리 낫다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암세포를 죽이는 약, 독이나 다름없는 빨간색약을 30분동안 아주 천천히 혈관에 주사하면 혈관마저 아파오는 것을 느끼곤 했다.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을 때도 참 황당했다. 독한 약으로 인해 모근이 녹아버린 머리카락들은 고개만 숙여도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세상에, 사람의 머리카락이 그렇게 많은줄 정말 몰랐다는 김씨는 며칠후 거울을 보고 앉아서 자기손으로 머리를 아예 모두 밀어버렸다.
투병생활중 얻은게 있다면 ‘이웃 사랑’.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살아 사랑같은건 느껴볼 틈도 없었지요. 그런데 암에 걸렸다고 하니까 얼마나 많은 가족, 친지, 교우들이 기도와 위로를 보내주는지, 내가 이렇게 사랑받는 존재였는지 처음으로 알게됐습니다. 건강은 잃었지만 얻은게 너무 많아요"
김혜영씨의 암은 다 없어졌을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가 정답이다.
현재의 몸 컨디션은 더할 수 없이 좋지만 문득 문득 찾아오는 불안은 어쩔 수 없다. 몸이 조금만 안 좋아도 암이 퍼진게 아닐까 불안하다는 김씨는 그러나 사람들의 사랑을 가득 안고 있는 지금 너무 따뜻하고 감사해 "곧 죽는다해도 행복하다"고 거듭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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