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거리를 바흐의 무반주 첼로 연주곡을 들으며 운전하다 마주친 장면, 홈리스 피플의 더 추레하고 젖은 어깨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순간적으로 창문을 열어 우산을 건네고는 백미러에 남은 그이의 모습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한번밖에 사용하지 않은 우산임을 기억하는 계산하는 마음이 나를 슬프게 한다.
내 아름다운 모국어로 쓰인 신문을 펼쳐들 때마다 줄기차게 등장하는 나이든 정객들의 모습, 한때는 우리들의 희망이기도 했던, 그들의 지칠 줄 모르는 정열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애국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남의 나라에서 살면서 제나라에 느끼는 이율배반적인 감정들. 옮겨 심어진 나무로서 그리워할 고향이 자꾸 작아지는 듯한 상실감이, 학교에서 총기가 휘둘러지는 이 곳이 그래도 인간답게 살기엔 낫다고 생각하게 하는 내 조국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디즈니랜드의 씽씽 돌아가는 롤러코스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몸이 나를 슬프게 한다. 아이를 둘 낳고부터는 무릎이 시리다는 말이 무언지 알게 되고, 때때로 에구구- 노인네가 돼서도 하고 싶지 않은 소리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오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두 팔을 들고 타는 롤러코스터를 한번 탄 후 이틀을 몸살 하듯 끙끙대는 내 몸에 일종의 배반감을 느꼈다면 주제 파악을 잘 못하는 것일까. 몸만큼이나 굳었을 내 감성과 정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밀어내는 데에 더 익숙한 닫힌 마음이 나를 슬프게 한다.
언젠가부터 부쩍 흰머리가 늘고 예전보다 더 코를 고는 남편의 잠든 모습, 첫돌아이 잔칫상을 앞에 두고 10분이 넘게 쏟아 부어지는 축복의 기도, 무엇을 가지러 왔는지 생각이 안나 냉장고 문을 열고 망연히 서있을 때 코끝으로 쏴아 밀려오는 찬 공기, 뽑아도 뽑아도 올라오는 잡초처럼 시시때때로 찬란한 햇빛 아래서도 느끼는 존재의 허허로움. 그 끝간데 없는 허전함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중학교 선생 15년에 더는 마음 둘 곳이 없다는 친구의 편지, 신세대라는 늘씬늘씬한 요즈음 아가씨들의 입에서 거침없이 나오는 남자를 고르는 조건들, 여전히 신데렐라를 꿈꾸는 그들의 쉰(!)세대적 사고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하루 벌이 일거리가 없을까, 새벽부터 몇 시간씩 홈디포 앞에 늘어서 있다가 트럭이라도 한대 멈출라치면 대여섯 명씩 우르르 몰려가는 그들의 힘겨운 삶의 현장이, 아마도 불법체류자가 다수일 그들의 불안한 눈동자가 우리를 슬프고도 안타깝게 한다.
바람? 바람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누구나 자기의 뜻과 상관없이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한번씩 손목을 잡히며 사는 게 아닐지. 그 바람 못지 않게 마음 저편에서 부는 바람, 사람의 내부에서 부는 바람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우도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개답지 않게 온갖 치장을 다하고 비타민까지 섭취하며 살지만 마음껏 풀밭 한번 못 뛰어보는, 살아있는 장난감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이웃집 강아지, 삼복더위에 에어컨 튼 자동차를 타고 가다 부딪히게 되는 커다란 곰 인형 속에 들어가 무언가를 광고하는 이, 편견에 가득 차 남의 삶을 판단하는 칼을 잘도 휘두르는 사람,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알 수 없는 거의 협박하다시피 강요하는 그 많은 정보와 광고들이 우리를 외롭고도 슬프게 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건, 이 모든 것이 2001년 이 봄을 사는 우리의 자화상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고단한 삶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더 상처가 되는 서로 서로가 되지 않기를, 그리하여 우리가 느끼는 일상의 크고 작은 슬픔들은 감미로운 미풍에 날려보내는, 모두에게 조금 더 여유 있고 의미 있는 4월을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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