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영화, TV에 사용됐던 소품들 본부서 전시
이미지 순화 및 요원 사기 진작 위해 비공개로
CIA가 지난 10일부터 버지니아주 랭리의 본부 건물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주로 1960년대 스파이 영화나 TV 쇼에 쓰여졌던 사진, 대본, 의상, 소품들을 모은 ‘스파이-파이(spy-fi)’ 전시회로 LA에 사는 극작가 대니 비더만이 소장한 4000점중 400점을 추려 모은 것으로 올 연말까지 계속된다.
10살 때 ‘U.N.C.L.E.에서 온 사나이’를 처음 보고 로버트 본이 담배갑으로 위장한 무전기를 여는 것을 보고 그만 스파이 장르에 매료되었다는 비더만은 MGM 영화사에서 최근 3회 제작된 제임스 본드 영화의 소품 자문을 맡기도 했지만 그가 가장 열정을 기울이는 분야는 스파이 소품 수집. 최근 그의 명성을 들은 CIA가 일부를 본부에서 전시해줄 것을 요청하여 실현된 이번 전시회는 물론 대중에 공개되지는 못한다. CIA 본부 건물 자체가 신원조회를 통과한 사람만이 입장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CIA는 대외적으로 이미지를 부드럽게 만들고 대내적으로 요원들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시키기 위해 이 전시회를 주선했다. 이제까지 침묵을 지키던 직원들 사이에 이 전시회는 재미있고 사기를 진작시키는 일로 평가되고 있다니 외국 정부를 전복시키고 점심을 먹으러 가야 사기가 올라갔던 냉전시대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싸워야할 악의 제국이 없어진 요즘 CIA 직원들은 과거 비밀에 부쳐졌던 자체 문서의 기밀을 해제시키거나 중국, 북한 및 사담 후세인, 송사리 독재자 및 컴퓨터 해커를 감시하느라 바쁜 정도라 할리웃에 의해 멋지게 묘사되었던 과거 황금기에 대한 향수를 떨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비더만의 수집품들을 보니 첩보업무의 ‘예술은 인생을 모방하고 인생은 예술을 모방한다’는 말에 새삼 공감하게 된다고 말하는 CIA 예술위원회 의장 칼로스 데이비스는 1966년부터 1973년까지 CBS에서 방송되던 ‘미션 임파서블’은 CIA 직원들도 즐겨보던 것으로 한 간부는 월요일에 출근하여 부하들을 모아놓고 드라마 장면을 제시하면서 "우리는 왜 그렇게 못하나? 우리도 그렇게 했나?"고 묻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아버지도 CIA 요원이었다는 데이비스는 자기가 CIA에 지원할 때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인물로 아버지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와 60년대에 히트한 TV 시리즈 ‘아이 스파이’에서 로버트 컬프와 공연한 빌 카즈비를 꼽을 정도였다고 했다.
첩보물을 사랑하다 못해 세 아이에게 일리야, 플린트, 본드등 픽션의 주인공인 스파이 이름을 붙였다는 비더만은 수집품을 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쓰는 가짜 총, 펜-라디오를 제작하는 사람에게서 구입했으며 다른 수집가나 스튜디오 세일, 경매장도 활용했다. 공짜로 얻은 것도 있었지만 한점에 수천달러를 들여 사기도 했다.
’맥스웰 스마트’에 나온 구두로 가장한 전화기, ‘에마 필’이 입었던 검정 가죽 바지, ‘오스틴 파워스’의 안경은 물론 ‘미션 임파서블’의 첫회 대본, ‘U.N.C.L.E.’에 1회 출연하고 750달러를 받기로 한 레너드 니모이의 계약서,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에 나오는 기차 안에 놓였던 금색 소파등 다양한 전시물중 비더만이 10세때 TV에서 처음본 담배갑 무전기는 천신만고 끝에 손에 넣었다.
몇년동안 꿈속에까지 나타날 정도로 집착을 가지고 CIA 요원을 방불할 첩보력을 발휘하여 수배하고 있다고 마침내 가지고 있음직한 수집가를 찾아내 연락을 했는데 그가 이유없이 몇주동안 미루다가 드디어 자기 수집품을 보여줬는데 오매불망하던 담배갑이 없어 물어보니 석달전에 버렸다는 대답이었다.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수집가 기질을 발휘, 그의 수집품을 차근차근 살피던중 쓰레기를 쌓아놓은 테이블을 지나다 언뜻 눈에 띄는 물건이 있어서 잘 헤치고 꺼내보니 나온 것이 바로 버린줄 알았던 담배갑 라디오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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