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가전제품업체인 월풀은 여전히 불만스러워한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만족한 듯 보인다. 미국 대통령은 여러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006년 최대 라이벌 업체인 메이태그를 17억 달러에 인수한 월풀은 해외 제조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이 대형인수합병에 따른 자사의 부당한 시장 지배력 행사를 막아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소비자들은 한껏 몸집을 키운 월풀의 가전제품보다 가격과 품질이 월등한 수입품을 여전히 선호했다. 그러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초반에 외국산 제품과의 경쟁을 환영한다던 월풀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 세탁기에 관세를 부과했다. 2020년 8월, 의기양양하게 월풀 공장을 방문한 트럼프는 캐나다산 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했다고 자랑스레 떠벌렸다. 이는 월풀의 제조가격이 상승한다는 사실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조치였다.
월스트리트 저널 보도에 따르면 지금 월풀은 무책임한 외국 경쟁사들이 미국으로 들어오는 가전제품의 가격을 낮게 책정해 관세를 끌어내리는 꼼수를 쓰고 있다고 주장한다. 원칙적으로 정부는 보호주의가 초래한 혼란을 능숙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한편 보호주의의 혼란 속에 미국 최대 농기계제조업체인 존 디어는 막대한 추가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로 올해 존 디어의 농기계 제조비용이 6억달러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게다가 ‘트럼프 관세’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이 미국산 대두에 ‘맞불 관세’를 놓은 탓에 대두 수출은 2024년에 대비 51%, 총 34억 달러 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작물재배자의 농기계 구입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경제 전반에 걸쳐 이와 유사한 사례가 급증하면서 고용에 악영향을 미칠 불확실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트럼프의 변덕스런 관세 선언 직전에 나온 노동통계국 보고서에는 기업들의 불안감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트럼프가 4월 2일 무더기 관세를 발표하기 직전까지 12개월 동안 창출된 일자리 수는 당초 전망치에 비해 91만 1,000개가 감소했다. 아니면 겉으론 정상인 듯 보였던 바이든 행정부가 현 정부 관계자들의 주장대로 지난해 대선 이전에 고용 데이터를 조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무 것도 믿지말라.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더니 트럼프의 턱없은 비진지함은 외국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지난달 푸틴이 알라스카에서 트럼프와 회동한 이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한층 강화했다. 이는 트럼프에 대한 러시아의 노골적인 경멸과 짝을 이룬다. 워싱턴포스트가 인용한 고위 러시아 정치인의 발언은 트럼프를 향한 조롱으로 가득차 있다: “트럼프는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다. 그는 푸틴과의 대화를 기다리거나, 푸틴과 이야기하고 있거나 푸틴과 얼마나 유익한 만남을 가졌는지 설명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알라스카 회동 전에 트럼프는 푸틴이 우크라이나전 종전을 위한 모종의 대책을 취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는 이를 무시했지만 심각한 결과는 따라오지 않았다. 트럼프는 고집스러운 러시아를 “곤경”에 빠뜨리겠다며 다시 한번 눈을 부라렸다. 지난 금요일 트럼프가 “내 인내심이 빠르게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며 “러시아에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을 때 푸틴은 아마도 하품을 했을 것이다.
트럼프가 생각하는 힘은 러시아 무인기가 무리를 지어 폴란드 영공을 침범했을 때 소셜 미디어에 올린 그의 반응을 통해 측정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지가 “194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출범이후 가장 심각한 나토 영토 침범”으로 규정한 이번 사태와 관련해 트럼프는 “러시아 무인기가 왜 폴란드 영공을 침범한걸까? 자, 이제 시작이다!”라며 과거 처칠의 단호함과는 사뭇 다른 반응을 내놓았다.
86년전 9월, 유럽에서 2차세계대전이 발발했고 독일과 소련은 함께 폴란드를 분할 점령했다. 폴란드는 그단스크 조선소에서 전기공 레흐 바웬사가 이끈 연대(solidarity) 운동으로 바르샤바 조약기구와 소련이 무너지기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86년전, 그단스크의 명칭은 단치히였다. (후일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한 뒤 나치에 부역했던) 프랑스의 한 소셜리스트는 “왜 우리가 단치히를 위해 죽어야 하는가”라는 슬로건을 만들었다. 이 슬로건은 단치히를 독일에 양도하라는 나치 독일의 요구를 받아들임으로써 아돌프 히틀러의 심기를 다독이기 위한 것이었다. 조롱기로 가득찬 푸틴은 “우리가 왜 핀란드를 위해 죽어야 하는가”라는 유화적인 반사작용이 반복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사춘기 아이처럼 소셜미디아에 과몰입하고 있는 동안 푸틴 행정부는 2014년과 2022년의 침공이전에 우크라이나에 관해 이야기했던 것과 동일한 어조로 핀란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워싱턴에 기반을 둔 전쟁연구소는 모스크바의 이야기를 이렇게 전한다: “만약 파시즘에 찌든 핀란드 정부가 러시아를 공격하는 발판이 된다면 핀란드의 국가정체성은 영구히 붕괴될 것이다. 러시아는 핀란드의 대량학살로부터 러시아계 주민들을 보호하고 문화 지우기를 통한 핀란드내 슬라브계 인구 말살 시도에 반대할 권리를 갖고 있다.”
미시간주 벤톤 하버의 월풀에서 일리노이주 모린에 위치한 존 디어와 나토 전투기가 러시아 무인기 일부를 격추시킨 폴란드 영공에 이르기까지 세계가 점점 더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진지함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긴장감을 자아내는 일련의 위기상황과 “자, 이제 시작이다”라는 그의 가벼운 반응 사이에는 섬뜩한 단절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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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F· 윌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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