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유치원에 다녀온 딸이 엎드려 울고 있었다. 엄마가 조용히 다가가 어깨를 감싸주었다.
“몹시 아픈가 보다. 어디가 아프니?”
“...”
딸은 말이 없었다. 한참을 흐느낀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이들이 나를 보고 놀렸어요... 내 얼굴이 꼭 프라이팬 같대요...”
엄마는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어린 딸이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지 열흘도 채 되지 않은 날 일어난 일이었다.
영석이네 가족이 미국에 이민 온 지 반년쯤 지났다. 한국을 떠나온 후 미국 생활에 정착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딸을 유치원에 입학시키려고 갔을 때 만났던 딸 또래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예쁘장한 아이들이었다. 코가 오뚝하고 파란 눈들이 반짝이는 모습이 인형 같았다. 그 아이들에게 딸이 이런 말을 듣고 올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아이들을 기죽지 않게 기르고 싶었다. 비록 외모는 다르게 보이지만 심성만은 착하고 밝게 길러야겠다고 다짐했다. 피아노도 가르치고 바이올린도 가르쳐 자신감도 심어주고 싶었다. 며칠이 지나자 딸은 다시 밝은 모습으로 유치원에서 돌아왔다. 차츰 유치원에 가는 발걸음도 가벼워 보였다. 배워 온 영어 노래도 잘 부르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곤 했다. 딸이 여간 고맙지 않았다.
이민의 삶은 녹녹하지 않았지만 생각만큼 힘들지도 않았다. 제일 걱정했던 것은 자녀들의 장래 문제였다. 여러 나라에서 온 아이들과 경쟁해야 하고 영어 장벽도 극복해야 했다. 어린 남매는 고맙게도 미국 생활을 힘들어하지 않았다. 아이들만 잘 자라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유치원을 마친 딸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더욱 활발해졌다. 학교생활을 참 좋아했다. 선생님의 칭찬에 아이들은 신이 나는 듯했다. 학과뿐만 아니라 피아노, 바이올린 연습도 계속했다. 영석이 부모는 이민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누나 못지않게 영석이도 매사에 적극적이었다. 피아노를 참 좋아했다. 음악을 전공해도 성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부모는 내심 아이들이 의사가 되었으면 했다.
영석이 부모는 아이들이 구김살 없이 자라가는 것이 대견스러웠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딸은 스탠퍼드 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딸이 자랑스러웠다. 의대 졸업 후 그 딸은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한 병원 소아과 과장으로 근무하는 중이다. 일주일에 이틀간 진료하고 다른 날들은 그 지역 소아과 의사들을 보살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약 250명의 소아과 의사와 상담도 하고 진료 중에 일어나는 문제나, 소아과 병원의 운영 자문 등 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영석이 아버지는 잠시 눈을 감는 듯하더니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처음 이곳으로 이민 와서 딸을 유치원에 입학시킨 일이 엊그제 같습니다. 어느 날 딸이 유치원에 다녀온 후 울던 때가 잊히지 않습니다. 반 친구들이 딸의 얼굴을 보고 놀렸지요. 코가 납작하게 생겼다고 손가락으로 눌러 보인 일이었지요. 그 아이가 지금은 소아과 의사가 되어 수많은 아이를 치료할 뿐만 아니라 소아과 의사들을 지도하고 있으니까요...”
오후의 넘어가는 햇살이 아버지의 불그스름한 얼굴을 반짝이게 하고 있었다.
<
전병두 서북미수필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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