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차를 타고 강변도로를 달려가던 친구가 “왼쪽 도로 옆의 높은 산이 과거 난지도였다”고 말했다. 난지도 제1매립지에 노을공원, 제2매립지에 하늘공원이 조성되어 서울사람들이 즐겨 찾는 생태공원이 되었고 하늘공원 초입에는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명품길이 되었다는 것이다.
거대한 쓰레기산을 기억하는 나는 믿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난지도 사람들이 모여 살던 판자촌은 고층빌딩들이 즐비한 디지털 미디어 시티로 변모했다고 했다.
80년대 중반에 그곳에 취재 간 적이 있었다. 거대한 쓰레기 산을 에워싼 자욱한 먼지와 검은 덩어리로 몰려 날아다니는 파리 떼, 무엇보다도 심한 악취 속에서 숨쉬기도 힘든 그곳에 사람들이 살았다.
쓰레기장을 뒤지는 넝마주이와 떠돌던 이들이 쓰레기를 주워 연명하며 수백 명이 모여 사는 판자촌 안에 개척교회가 있었다. 젊은 목사 부인이 난지도 사람들과 같이 쓰레기장에서 일하면서 교회 운영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긴 장화에 머리수건과 마스크를 쓰고 고무장갑을 낀 채 쇠스랑을 들고 하루종일 허리 굽혀 돈 될만한 쓰레기를 줍던 그녀는 후진하는 트럭에 치어 압사했다. 사고로 아내를 잃은 목사를 인터뷰하러 갔는데 천막 교회 안에서 비장한 표정으로 교회개척사와 아내 이야기를 했다. 말하는 목사의 머리 위, 입술 위에도 파리는 인정사정없이 날아와 앉았다.
쓰레기 언덕 아래의 움막은 쓰레기장에서 나온 판대기와 비닐로 얼기설기 지어졌고 목사 부부의 방은 사모의 울긋불긋한 옷들이 걸려 있을 뿐 아무 가구도 없었다. 한 사람이 눕기에도 비좁아 방이 마치 벽장같았다.
자욱한 먼지 속에 대낮에도 전조등을 켠 쓰레기차가 줄 서서 들어와서 순서대로 싣고 온 쓰레기를 쏟아부으면 수집군들이 쓸만한 것을 골라내었다. 그 위를 중장비차가 오가며 다지고 다시 수집군들이 고철, 유리병, 비닐장판 등을 골라내었다.
취재를 끝내고 나오니 천막교회 앞에 세워둔 차가 사라지고 없었다. 사진기자가 경악하면서 “흰 차가 까만 차가 되었어.” 말해보니 거대한 파리떼들이 새까맣게 차를 온통 뒤덮고 있었다.
1960년대 중반만 해도 난지도 주변은 샛강 맑은 물에 고기들이 뛰놀고 계절마다 다른 들풀과 꽃이 핀 아름다운 섬이었지만 1977년 제방을 쌓고 난지샛강을 매립하면서 육지가 됐다. 늘어나는 서울 인구를 수용할 주거지로 개발되었지만 1년도 안되어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됐다. 서울 인구가 늘어나면서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접근성이 좋은 난지도가 서울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된 것이다.
1978년 3월부터 매일 평균 트럭 2,400여 대가 드나들면서 쓰레기를 쏟아붓고 그위에 흙을 붓고 다시 쓰레기를 덮고 흙을 들이부으니 98미터 높이 쓰레기 산 두 개가 생겨났다. 이곳에는 생활쓰레기, 건설폐기물, 산업폐기물 등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채 마구 버려졌고 난지도 인근 서교동과 망원동까지 바람을 타고 매캐하고 역겨운 쓰레기 냄새가 퍼지는 등 문제가 많았다. ‘꽃섬’이라 불리던 난지도는 먼지, 악취, 파리로 유명해졌다.
급기야 1991년 경기도 김포에 쓰레기매립지가 조성되면서 난지도 매립장은 1993년 문을 닫았고 1996년부터 쓰레기산에서 나온 침출수와 가스 처리를 위한 안정화 공사에 들어갔다. 1998년 서울 월드컵 경기장이 난지도와 인접한 상암동으로 정해지면서 난지도 일대는 월드컵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트롯가수 임영웅 콘서트가 열린 월드컵경기장, 주요 언론 및 방송사 주요시설이 있는 디지털 미디어 시티, 인근의 고층아파트들을 직접 보니 낯설기 그지없었다.
황석영은 난지도를 소재로 한 소설 ‘낯익은 세상’(2011년)을 펴내며 ‘산업사회가 남긴 욕망의 잔재나 기억들을 쓰고 싶었다’며 욕망과 소비와 폐기를 반복하는 삶의 방식이 우리에게 낯익은 것임을 비판했었다.
지난 3월초, 약속 장소인 디지털 미디어 시티에 위치한 빌딩 1층의 커피샵을 찾아 천천히 걸어 지하철역을 오가며 난지도 자취를 찾으려 했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쓰레기 섬을 기억하는 나는 이곳에 살던 난지도 사람들이 궁금하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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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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