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에 우리 가족은 시카고를 여행할 계획이었다. 한국과 미국에 떨어져 살고 있는 자매들이 시카고에서 만나 관광한 후 함께 LA로 돌아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야무진 계획이었다. 다들 비행기 표까지 구입하고 목 빠지게 기다리던 이 여행은 그러나 실현되지 못했다. 바로 그 두 달 전, 갑자기 미국과 한국과 세계가 다같이 문을 걸어 잠갔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셧다운의 시작이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5년 전 일어난 일인데, 얼마전 한국의 언니와 전화하다가 불현듯 생각나서 그 이야기를 꺼냈더니 언니는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사실 나 역시 거의 잊고 있었으니 불과 5년 전의 소동이 이렇듯 ‘희미한 옛 추억의 그림자’가 돼버릴 줄은 미처 몰랐다.
팬데믹은 우리 모두 그때까지 겪어보지 못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기에, 또 그와 관련된 역대급 뉴스들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기에, 당시의 소소한 사건들은 머릿속에서 많이 지워진 모양이었다.
2020년 3월15일, 정신없이 굴러가던 톱니바퀴를 억지로 멈춰 세우고 시작된 강제 격리생활, 학교와 직장과 식당들이 문을 닫고 텅 비었던 거리, 코비드 검사를 위해 길게 늘어섰던 차량행렬, 백신접종 카드를 지참하고 다녀야했던 번거로움, 공항에서의 PCR 검사와 14일간 자가격리, 관중 없는 스포츠경기와 올림픽… 그렇게 많은 일들이 옛이야기가 돼버렸고 그때의 풍경들은 벌써 많이 잊혔다.
시계를 앞으로 돌려 2025년 3월 현재, 사람들은 이전의 일상을 되찾았다. 팬데믹으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거나 인생이 크게 바뀐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여전해 보인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걸까?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팬데믹 5주년을 맞아 최근 전문가들은 우리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 다양한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다. 처음에는 도무지 한치 앞도 볼 수 없었지만 이제 시간이 꽤 흘러 그 영향과 후유증을 평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실험을 전 세계가 다함께 하게 된 덕분에 비상시 인간의 신체적, 행동적, 심리적 변화를 지켜보고 분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우선 의학적으로 이 바이러스는 특이하게도 3개월 이상 증상이 계속되는 ‘롱코비드’라는 장기적 신체변화를 환자의 약 20%에게 남겼다. 만성피로와 뇌안개(brain fog)로 대표되는 증상이 미국 성인의 7%인 1,700만명, 세계적으로 4억명을 오랫동안 괴롭혔으며 이것은 두통, 어지럼증, 기억력과 집중력 손실, 심지어 우울증과 불안증까지 야기했다.
사회적으로는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음주소비량은 팬데믹 기간에 수직상승했으며 이후 차츰 줄었지만 지금도 그 전에 비해서는 높은 수준이다.
반면 관계의 단절은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새삼 조명됐다. 소셜미디어는 만남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 특히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 노인들은 심혈관계 질환과 인지건강이 눈에 띄게 퇴화한다는 사실도 이 기간에 다시 증명되었다.
수많은 사람이 이 바이러스로 속절없이 죽어가자 ‘인생은 짧다’며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듯 더 모험적이고 활기찬 라이프스타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감염 위험에 대한 두려움으로 해외여행, 심지어 대중교통을 기피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퓨리서치에 따르면 아직도 항상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4%, 여행할 때면 반드시 쓰는 사람이 13%나 된다. 여행 패턴도 변해서 가족과의 여행이 늘었고,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 외진 여행지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취업보다 자기 비즈니스를 창업하는 비율이 높아진 것과 직장인들의 근무자세가 소극적으로 변한 것도 또 다른 변화다. 2020년 셧다운 대량실직에 이어 2022년부터 대 사직(Great Resignation)과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라 해서 수백만명에 이르는 노동인구가 새로운 잡을 찾아 일터를 떠났거나 남아있더라도 업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온라인 샤핑이 급격하게 늘었고, 익숙하지 않던 텔레헬스(영상진료)가 재빨리 자리를 잡으면서 꼭 필요하지 않은 의사 방문과 수술이 줄었다. 재미있는 것은 하이힐을 신고 다니다가 발을 삐거나 골절돼서 응급실을 찾는 여성들의 숫자가 팬데믹 동안 급감했는데, 이것이 운동화와 굽 없는 플랫슈즈의 유행을 앞당겼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외에도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내적 변화가 있었다. 사람들은 고립된 생활을 통해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게 됐으며, 인간관계를 재정립하고 삶의 우선순위를 헤아리게 되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할 것은 이 모든 것이 다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코비드는 아직도 우리 곁에 있고 미국의 주요사망원인이며 지금까지 무려 700만 명 이상이 이 바이러스로 생명을 잃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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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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