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기 의자가 한 개씩 있다.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나 볼 일을 보고 다시 앉고, 일이 있으면 외출했다가 다시 들어와 앉는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으나 내 의자는 나와 살며 혹사당하는 건 아닌지 생각할 때가 더러 있다.
의자를 보면 이따금 불우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떠올릴 때가 있다. 그는 의자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림으로 남겨 놓았는데 지금은 실제 그때 고흐가 앉았었던 의자보다 그 의자를 그린 그림 값이 상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 그림 의자 위에는 파이프가 놓여있어 주인이 잠시 어디 갔다 올 것 같은 예감을 불러일으킨다. 조금 긴 외출이라면 파이프를 들고 나갔을 텐데 의자 위에 잠시 놓고 나갔으니 곧 들어온다는 암시가 거기 있다.
그런데 친구 고갱은 고흐와 달리 의자에 촛불을 켜 놓은 그림을 그렸다. 많은 사람들이 의미를 추적했다. 의자 위에 촛불을 켜 논다는 것은 범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의자 주인의 죽음을 모티브로 그렸다는 설도 있지만 고갱이 그렇게 말한 건 아니니까 확실치는 않다.
의자에는 사람이 앉아야 한다. 빈 의자에 파이프를 올려놨다든지 촛불을 켜서 올려놨다는 건 빈 의자를 보는 것 보다 더 쓸쓸한 느낌을 준다.
오래전 졸업했던 학교에 간 적이 있다. 교실 문을 열었을 때 책상과 함께 눈에 들어오는 빈 의자는 왠지 쓸쓸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가졌던 적이 있다.
또 있다. 더 강렬한 느낌. 그것은 주일이 아닌 주중에 빈 교회에서 보는 빈 의자는 슬프기까지 하다. 의자는 사람이 앉아있어야 한다. 간혹 외출했다가 돌아와 거실을 지나 서재에 들어설 때 내가 애용하는 의자가 당연히 비어 있음을 보는데도 짧은 순간이지만 무언가 적막을 느낀다. 그 의자의 주인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임에도 비어 있는 빈 의자의 고독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오면 옷을 갈아입고 의자에 앉는다. 그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안도(安堵)가 엄습한다. 컴퓨터를 키고 책상을 정돈하고 읽던 책을 확인하고 메모지를 꺼내고 펜을 옆에 둔다. 문득 사소한 내 일상과 내 옆에서 나를 응시하는 소품(小品)들의 온기를 느낀다. 하여 의자는 내 귀소본능(歸巢本能)의 동기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의자에 앉으면 멀어진 삶의 회고와 함께 내일을 향한 분발의 여진(餘震)을 감지하기도 한다.
하버드대학에서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영국 북쪽 외딴 섬에 사는 몇 마리의 새들을 비행기에 싣고 하버드대학에 와서 놓아줬는데 12일 뒤에 섬에 있는 자기들 집으로 돌아갔다. 3,050마일 거리를 하루 평균 244마일씩 날아서, 죽음을 무릅쓰고 집으로 갔다는 것은 그 새들에게는 정말 잊을 수 없는 것들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은 모른다.
새들이 잊지 못하는 나뭇가지와 둥지. 그 섬만의 푸르른 창공과 목을 축이던 호수와 연못의 추억을. 그리고 늘 노래하던 어미 새와 짝을 이뤄 비행하던 친구들과 연인의 날개 짓과 처연한 울음소리를 어찌 단칼에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몇 년 전, 뉴욕을 떠났다가 다시 왔다.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뒷말을 한다. “거기서 잘 살지 못하고 왜 왔을까?” 의문을 제시할지 모르지만, 뉴욕을 구성하는 무대장치의 이런저런 소품들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뉴욕을 떠나 텍사스로 갔다가 다시 온 친구도 말한다. “뉴욕은 숨을 쉬게 만들어요.” 인생은 의자가 필요하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침대에 들 때까지 의자를 중심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숨과 같은 편한 의자가 필요하다.
재벌 집에 시집 간 딸이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남편이 미워 죽겠어요.” 이게 무슨 소린가. 딸은 의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이 아닌 의자, 내가 앉으면 딱 맞는 의자, 의자가 놓인 내 공간, 내 정든 소품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의자를 놓기에 너무 넓은 방이 문제다. 의자 말고도 다른 물건을 채워야 하니까 의자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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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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