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출범과 함께 지난 한 달 동안 잘린 연방공무원이 1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우선 자발적 명예퇴직을 신청한 사람이 7만5,000명에 이른다. 오는 9월말까지 월급과 베네핏이 보장된다는 조건하에 떠난 사람들이다. 이들 외에 일론 머스크가 휘두른 칼에 쓰러진 공무원은 지금까지 3만 명 이상이라고 뉴욕매거진이 보도했다. 하지만 곧 10만명을 넘어선다는 것이 USA투데이의 전망이다. 머스크의 정부효율부(DOGE)의 일차 해고대상이 입사 1년 미만의 ‘모든’ 수습직원인데 이들은 전체 공무원(240만)의 10%에 해당하는 22만 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칼날은 부서를 가리지 않고 있다. (머스크는 21일 보수정치행동회의 단상에 전기톱을 들고 나와 휘두르며 관료정치를 끝장내겠다고 으르렁댔다.) 국방부, 재무부, 내무부, 보건후생부, 보훈부, 에너지부에서는 각각 수천 명에게 해고 통지를 보냈고 국방부, 교육부, 법무부, 국토안보부, 교통부 등도 수백 명씩 인력을 잃었다. 국세청(IRS)은 세금보고 시즌임에도 7,000명을 해고했고, 농무부 산림청은 3,400명의 파크레인저들을 내보냈으며, 주택도시개발부는 약 5,000명의 면직을 준비하고 있다. 이외에도 질병통제국(CDC), 환경보호청(EPA), 중소기업청(SBA) 등이 모두 수백 명씩 감원했고,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은 아예 폐쇄 절차를 밟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사정의 굿판 가운데서도 가장 충격파가 큰 것이 USAID의 해체다. USAID(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는 미국 국제개발처라 번역되지만 알파벳 그대로 미국의 해외원조부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USAID는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창설한 기관이다. 그전까지 정부 내에 산재해있던 수십개의 국제원조 부서를 통합해 연방차원의 전문기관으로 만든 것이다. 그 목적에 대해 케네디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전략적 이해와 “현명한 리더이며 좋은 이웃으로서의 도덕적 의무”라고 말했다. 즉 냉전시대 소련의 영향력 차단을 위해서는 미국이 가난하고 내정이 불안한 나라들을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에 따라 실제로 수혜를 본 것이 한국이었다. 한국과학기술원과 한국개발연구원이 모두 USAID 차관으로 설립됐고 통신망, 상하수도 등 인프라를 깔 때마다 USAID 지원금이 투입됐으며, USAID 차관으로 지은 아파트들이 훗날 민간자본의 기초가 됐다.
냉전이 종식된 후에도 세계 100여 나라에서 기아와 질병퇴치, 재난구호, 난민구제 등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뻗어온 USAID는 직원 수가 1만4,000여 명, 연 예산이 440억 달러에 이르는 세계최대 개발협력기구로서 다른 나라들이 넘볼 수 없는 인도적 영역을 개척해왔다.
문제는 이러한 국제원조를 공화당과 보수파들은 미국의 국익을 해치는 ‘쓸데없는 낭비’로 여겨왔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머스크와 함께 USAID가 부패와 사기의 온상이며 미국의 적대국을 지원했고 워크(woke) 의제에 개입한 “급진적 좌파소굴”이라며 해체 1순위로 꼽았다. (그러나 주요언론사들에 따르면 이런 주장은 대부분 과장이거나 거짓이며 백악관은 이중 단 한 건도 사실로 입증하지 못했다.)
결국 지난달 27일 USAID의 대규모 해고 명령이 이메일로 하달됐다. 일순간 모든 해외원조가 동결됐고, 2월7일부로 전 직원 휴직 및 귀국령이 내려졌다. 그리고 USAID는 290명의 핵심인력만 남은 채 국무부 산하로 격하되었다.
갑작스런 폐쇄 결정으로 현재 세계 곳곳에서 5억 달러 상당의 식량과 의약품이 창고와 항구와 선박에 묶인 채 썩어가는 동안 나이지리아에서는 비상급식소가 문을 닫는 바람에 수천 명의 아이들이 아사 직전이고, 우간다에서는 에볼라가 급속히 번져 의료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며, 짐바브웨에서는 콘돔 지급이 동결되어 수십만 여성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어 올 한해 출산 중 사망하는 사람이 8,300명이나 될 것으로 추산된다.
무엇보다 아프리카의 고질병인 HIV/AIDS와 결핵, 말라리아, 조류독감 등 각종 전염병의 치료약과 백신이 중단됐는데 이에 따른 후폭풍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전문가들은 당장 25개국에서 33만명의 HIV 환자들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USAID의 해체를 러시아, 중국, 헝가리 등 독재국가들이 쌍수를 들어 반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USAID는 미국의 수퍼파워를 증명하는 기구였고 인권, 환경보호, 민주주의, 부패척결, 언론자유를 심어주는 USAID의 활동은 독재세력에 대한 침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트럼프와 머스크가 알아서 이를 폐쇄했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기쁠 것인가?
대학시절 USAID에서 인턴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앤디 김 상원의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한 일은 전 세계에서 미국의 퇴각”이라고 비판했고, 에이미 클로부차 상원의원은 “세상을 더 위험한 곳으로 만드는 중국와 러시아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한탄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권력과 가장 큰 부를 가진 두 사람이 지구에서 가장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짓밟고 있다.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좋은가? 이웃이 배고파 죽어가도 정말 아무렇지 않은가?
<
정숙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