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거스르는 계엄령 사태에도 여야 지지율이 접전으로 나오는 건 비정상이다.” 요즘 정당 지지율을 납득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설 연휴 기간 각종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각각 40% 전후로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2·3 계엄 직후 야당 지지율이 여당에 비해 20%포인트 이상 앞섰던 것에 비하면 계엄·탄핵 정국에서 지지율 추세가 뒤바뀐 셈이다. 2016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새누리당 지지율이 12%까지 추락했던 것과도 대비된다.
민주주의를 훼손한 계엄 선포는 분명히 잘못된 것인데도 여권 지지율이 회복된 까닭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1차적으로 ‘박근혜·문재인 학습 효과’로 설명한다.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보수 분열이 문재인 정권의 출범과 실패로 이어졌다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 보수가 결집에 나섰다는 것이다. 거대 야당의 탄핵·입법 폭주 등을 보면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집권 가능성에 공포심을 느끼는 보수·중도층이 늘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여당 내부의 반성과 쇄신 없이 야당의 무리수에 따른 반사이익에만 기대는 것은 한계가 있다. 연속 5주째 상승하던 여당의 지지율도 정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결국 국회에서 가결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될 가능성이 높다. 3~4월 중 탄핵 결정이 이뤄진다면 5~6월 중 대선이 치러질 개연성이 있다.
조기 대선이 실시되면 여야 후보 중 누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까. 전문가들은 대선 승부를 가르는 6대 변수로 시대정신과 대결 구도, 바람, 인물, 정책 이슈, 돌발 변수 등을 거론했다. 시대정신(Zeitgeist)은 현재와 미래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 가운데 다수 국민들이 공감하는 핵심 국가 과제라고 규정할 수 있다. 정치경제학자인 앤서니 다운스는 ‘경제이론으로 본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유권자는 선거 이후 즉 가까운 미래에 더 많은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는 정당과 후보를 선호한다’고 결론 내렸다.
다운스의 시각에서 우리나라의 첫 번째 시대정신으로 ‘성장’을 꼽을 수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내수 침체와 수출 둔화에 정국 불안까지 겹쳐 올해 1%대로 곤두박질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게다가 경제·기술 패권 전쟁 가열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쇼크까지 겹친 상황인데 저성장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글로벌 정글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주도해온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저비용·고성능 AI 모델을 개발해 충격을 준 것은 불꽃 튀는 기술 전쟁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구조 개혁과 초격차 기술 개발을 통해 신성장 동력을 점화해야 지속 가능한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두 번째 시대정신은 ‘안보’다. 북러가 밀착하는 가운데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핵을 놓고 북미 직거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한반도의 안보가 어느 때보다 불안한 이유다. 이럴 때일수록 자주 국방력과 한미 동맹 강화를 통해 안보와 평화를 힘으로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셋째는 ‘공정’이다. 정의가 이념·진영의 잣대에 따라 바뀌는 ‘내로남불’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적용되도록 하는 공정의 확립이 중요하다. 넷째는 ‘통합’이다. 국론 분열을 멈추고 국력을 결집해 재도약하려면 국민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
4대 과제 실현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은 경제·안보 포퓰리즘이다. 나랏돈을 국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나눠주거나 무상 복지를 대폭 확대하는 방식으로는 모럴해저드를 조장할 뿐 성장과 복지를 모두 이룰 수 없다. 또 ‘전쟁이냐 평화냐’ 이분법을 내세워 말로는 평화를 외치면서 북한과의 대화 이벤트에 집착하는 안보 포퓰리즘은 지속 가능한 평화 체제를 만들 수 없다. 외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시간을 벌어주고 군사훈련 중단·축소로 우리의 국방력을 약화시킬 뿐이다.
이재명 대표는 최근 성장 우선과 한미 동맹 강화 등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이 그동안 반(反)시장적 입법을 추진하고 친중(親中) 행태를 보여왔기 때문에 이 대표의 진정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가상 양자 대결에서 민주당의 이 대표와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 접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한발 앞서 시대정신을 내놓고 실천해가는 후보가 대권 고지에 오르고 나라 위기를 극복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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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덕 서울경제 논설실장·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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