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미국 제47대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다. 남편이 출장 가던 날이라 생중계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유튜브에 오른 영상을 다시 찾아보았다. 한글 자막이 나오니 얼마나 편하던지 체증이 내려갔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미국의 황금기가 바로 지금 시작된다고 밝혔다. 황금기가 시작되면 국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 수 없으나, 부디 삶의 질이 향상되고 민생고에 숨통이 트였으면 좋겠다는 실낱 같은 희망을 걸어 보았다. 아울러 미국인의 희망, 번영, 안전, 평화를 되찾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일 것이라는 약속도 하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쪼록 미국인 뿐 아니라, 세계의 평화와 경제 안정에도 두루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훌륭한 지도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알고리즘 탓인지 관련 영상이 계속 떴다. “취임식 공연사고 미공개 풀영상! 대체 무슨 일이?”라는 타이틀이 시선을 끌어당겼다. 음향에 문제가 생겨 무반주로 불렀던 캐리 언더우드의 취임식 축가에 관한 영상이었다. 지난번에 긴장하고 보았던 장면이라 집중해서 보았다. 그녀가 축가를 부르기 위해 관중 앞에 섰는데, 불러야 할 노래 반주가 나오지 않았다. 25초쯤 지났을 때 1초간 반주가 들렸는데, 이내 끊기더니 복구가 안 되는 상황이 발생했던 거다. 1분 20초 동안 정적이 흘렀다. 나 같은 소시민의 경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녀에게도 그 시간은 천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대통령의 표정도 편치 않아 보였다. 관계자가 그녀에게 사정을 알리는 듯 보였다. 그녀는 관중에게 가사를 아는 분은 함께 불러달라고 유도하며 무반주로 ‘America the Beautiful’를 노래하였다. 진심을 담은 1분간의 연주는 서늘했던 식장 분위기를 순식간에 녹여주었다.
라디오방송에서의 정적은 방송사고다. 10초만 소리가 끊겨도 청취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런데 2분여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면 초대형 방송사고인 거다. 그런 면에서 화면이 보이는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려니 했거나, 모르고 지나간 사람도 있었을 테니까. 매체들은 위기를 잘 넘기고 우뚝 선 캐리 언더우드의 오래전 영상까지 찾아내서 올리며 칭찬하였다. Global Direct News 동영상에서 진행을 맡았던 유미나도 “위기는 기회가 아니라, 위기는 준비된 자들에게 선물이다”라는 말로 그녀의 침착한 대처 능력과 실력을 높이 평가했다.
“위기는 준비된 자들에게 선물”이라는 말이 적용되는 예는 많을 것이다. 그중 하나가 KBS교향악단 이원석 팀파니 수석의 경우가 아닐까 싶다. 정기연주회 도중 2번 팀파니가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건조한 날씨 때문에 악기가 예민해진 데다 말렛으로 강하게 연타하다 보니 가죽이 쩍 갈라졌던 거다. 연주자는 신속히 악기를 빼내고 1번 악기를 3번 곁에 붙이더니 팀파니에 귀를 바짝 대고 빠르게 조율하여 음을 맞추었고, 마침내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의 중요 구간을 팀파니 3대로 완벽하게 연주하였다. 그 영상으로 인해 팀파니라는 악기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고, 그는 주목받는 사람이 되었다. 위기에 대처했던 그의 행동이 단순한 순발력이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속담을 굳게 믿는다. 넘어져 봐야 일어나는 법을 알게 되고 실패해 봐야 단단해진다. 경험이 축적되면 노하우가 생기듯 위기를 극복하는 힘도 그렇게 길러질 것이다. 여느 때보다도 안정과 회복이 요구되는 시기이다. 전쟁, 산불을 비롯한 자연재해, 경기침체 등으로 생긴 깊은 상처가 하루 속히 치유되고 새살이 돋았으면 좋겠다. 국민의 소원을 담은 문장 끝마다 “이루어졌다”라는 동사가 붙어서 저마다 행복한 황금기가 도래하기를, 준비 없이 맞은 위기까지도 선물이 되는 기적 같은 2025년이 되어 주길 전심 다해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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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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