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토요일 아침에 창경궁 쪽에서 일을 보고 부암동 미술관에 들러야 했고 오후 4시까지 북촌에 갔다가 6시에 목동으로 가야 했다. 그 스케줄이 턱턱 막힌 것이 광화문과 세종문화회관 앞에 버스가 서지 않았다.
오전에는 30분 도보로 경복궁 3번출구 버스 정류장으로, 오후에는 40분 도보로 삼청공원 입구까지 가야 했다. 저녁에는 광화문 쪽은 아예 길이 없어 청와대 앞길로 자하문 쪽으로 빠져나가서 목동에 가야 했다.
서울은 요즘 사안에 따라 중심가 도로, 여의도 국회 앞, 대통령 관저 근처, 법원과 헌법재판소 앞 등에 깃발과 응원봉을 흔드는 사람들, 확성기를 들고 소리치는 사람들로 길이 없어진다.
탄핵촉구집회와 탄핵반대집회가 대치한 곳에서는 날이 갈수록 점점 팽팽하고 긴장된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처음에는 사람의 목소리, 증오에 찬 고함, 급기야 폭행 사태가 발생했다.
외신들은 19일 새벽 3시께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 결정이 알려지자 반발한 윤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에 난입해 일으킨 폭력 사태를 앞다투어 보도하며 미연방 의회 폭동사태를 함께 언급했다.
2021년 1월6일 워싱턴 DC에서 발생한 그 사태는 2020년 11월 대선에서 조 바이든에게 패배한 도널드 트럼프의 부정선거 주장에 동조한 극우 지지자 수천 명 이상이 상·하원의 당선인증 절차를 막기 위해 의사당에 몰려가 난동을 부렸었다.
12.3 계엄선포 이후 한국의 정치 위기는 심화되고 있고 이에 휘둘린 사람들은 감정 조절을 못하고 있다. 차가운 거리에서 덜덜 떨며 소리치는 사람들, 이들 모두 따뜻한 집안에서 식구들과 저녁 시간을 보내려면 우리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광화문 광장을 예로 들면, 세종대왕 동상 앞쪽부터 동화면세점, 때로 덕수궁까지는 탄핵반대 집회가. 동십자각 앞부터 고궁박물관, 때로 효자동 청와대 앞길까지 탄핵촉구집회가 열린다.
성격이 다른 두 개의 집회는 불과 수십여 미터 간격을 두고 치열하게 각자의 소리를 내고 있다. 딱 그 경계에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있다.
이곳은 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의 대한민국 역사를 전시하는 곳인데 이곳 3층 기획전시실에 하얼빈 의거 115주년 기념특별전으로 안중근의 ‘서(書)’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글씨를 통해서, 교육가이자 의병이었고 격동의 시대에 끊임없이 고민하는 독립운동가로서의 그의 삶을 돌아 보고자 한 전시는 생(生), 의(義), 사(思) 3부로 나뉘어져 있다. 굵고 진하면서도 힘찬 글씨 한 자마다 독립 의지와 신념이, 곧은 정신이 서려 있다.
전시작 중에 ‘동양을 보호하려면 먼저 정략을 고쳐야 한다. 때가 지나 기회를 놓치면 후회한들 무엇하리오.’라는 글이 있다.
서양 열강이 동아시아를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동아시아 3국이 힘을 합쳐서 이에 맞서야 함에도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한 이 문장은 동양평화사상과 자신이 무엇을 위해 독립운동을 했는지를 알려준다.
박물관 3층 옥상 정원으로 나가면 경복궁, 청와대, 백악산이 보이고 집회의 모습이 훤하게 내려다보인다. 언제나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 안중근이라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처한 이 난국을 어떻게 볼까, 박물관 안까지 왕왕대는 소리를 들으며 이 땅의 국민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즈음하여, 배우 현빈이 안중근 역으로 나오는 영화 ‘하얼빈’(우민호 감독)을 보았다. 첫 장면은 안중근(현빈 분)과 모리 다쓰오 소자(박훈 분)가 각각 이끄는 대한의군과 일본군이 진흙탕에서 육탄전을 벌인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 그것도 돌과 칼을 들고 사력을 다해 상대방을 쳐서 기어코 죽인다. 사람이 아니다. 모두 짐승이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사람이어야 한다. 더 이상 피도 눈물도 없는 짐승이 되어서는 안된다.
스스로 희생하여 일본 제국주의를 향해 총구를 겨눈 안중근이다. 어수선하고 불안하고 긴장된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언제쯤 평화로운 일상을 찾을 것인지, 안중근 의사에게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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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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