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의 날씨가 사흘째 거센 바람을 동반하고 몸을 옴츠리게 한다. 이곳은 플러싱에 위치한 성인 어덜트 데이케어. 아침 잠이 없는 한 어르신은 일찍부터 나오셔서 커피 한 잔에 몸을 녹이고 화투를 가지고 오늘의 운세를 점친다.
주방에선 못 오시는 어른들께 도시락 배달을 위한 준비로 분주하고, 한 분, 두 분 “Good morning!”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 하루가 열린다. 웬만해선 결석을 안 하시는 전 국민학교 교장 선생님 출신이신 103세 되신 아버님께서 오늘도 어김 없이 어머님과 함께 희망찬 얼굴로 들어 오신다.
하이 파이브! 이 분께 데이케어는 하루의 낙이며 삶의 의미이시기도 하다. “충성! ” 빨간 모자에 경례를 붙이며 들어 오시는 해병대 출신의 아버님은 아직도 군기가 남아 있고, 하루도 결석 하시는 법이 없다. 워커에 의존하여 어머님과 함께 늘 일찍 등장 하시는 부부님은 티격태격 다투시기도 하지만 서로 챙기시고 떨어지는 법이 없다.
연세가 들어 가시다 보니 알츠 하이머를 약하게 혹은 심하게 겪고 계신 분들도 계시고, 옆에서 서로 챙겨 주며 하루 하루 정이 들어 가는 이 곳은 실로 정부로부터 천혜의 혜택을 받고 있는 노인들의 천국 이라는 말에 손색이 없다.
멀리에서 지인들끼리 팀을 이루어 한 시간 이상을 차로 달려 한 테이블, 두 테이블 가득히 좌정하시고 나면 훈훈한 농담과 웃음꽃이 피어 난다. 오시자 마자 신문부터 챙겨 정독을 하시는 분, 숨은 그림 찾기, 낱말게임, 스도쿠… 면학 분위기로 바로 들어 가시는 분들은 필경 소시적에 공부를 즐겨 하신 분들로 짐작 된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하루의 건강을 위해 다 함께 국민 체조로 몸을 풀고 각자 교실로 들어가 원하는 수업을 받으신다. 언제나 만면에 웃음을 띠고 댄스를 즐기시는 에너자이저 어머니가 나타나면 마치 여고 교실 분위기처럼 아무개야! 방가 방가! 화기애애한 무드가 조성 된다.
조용한 음악에 맞추어 대만 사부님과 함께 하는 타이치는 몸과 마음을 편하게 풀어 주는 어르신들께 인기 최고의 운동, 컴퓨터실에서 휴대폰과 함께 신문명의 편리함을 하나씩 배우시느라 열심이신 분들, 미국 생활에 소통을 위해 열강 하시는 영어 선생님에 귀를 기울이시는 초롱초롱한 눈빛, 넓은 강당에서 요가, 한국 무용, 라인댄스, 장구, 탁구활동을 통해 활력을 얻고, 기타를 가슴에 품어 안고 선율을 익히시느라 애쓰시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흘러가고, 신나게 드럼 치며 리듬을 타시는 아버님의 모습에서 젊은 날의 패기와 열정을 엿볼 수 있다.
하루의 꽃인 빙고 시간이 돌아 오면 모두가 집중! 번호 하나 하나를 맞추어 가시는 것이 마치 시험에서 정답을 찾아 내는 양 몰두 하시고, 당첨 되셨을 땐 빙고! 를 외치며 나오셔서 상품을 골라 가시는 즐거움은 누구도 이의 없는 공평한 게임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시는 곳이 멀든 가깝든 편안히 모실 수 있도록 준비된 차량으로 즐거웠던 하루의 배웅 인사를 끝내고 나면 데이케어에 고요가 찾아 온다.
나는 어언 12년째 데이케어에서 어르신들을 돌보아 드리는 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의 권유에 의해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 분들이 곧 나의 미래이기도 하고 분명 귀한 일이라는 확신을 갖고 일 하고 있다.
초창기 데이케어는 인원도 소규모였고,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소박한 식사에도 정을 나누며 뜨락에 있는 봉숭아를 따서 서로 물들이기도 하고, 도란도란 둘러 앉아 송편을 빚어 요리해서 나누어 먹기도 하며, 가정의 애경사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노인들의 휴식처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 어르신들의 마음과 모습은 변함없는데 미국 정부에서 국민들의 세금으로 마련한 신성한 복지제도를 일부 단체에서 훼손하기 시작하여 금품을 제공하며 어르신들을 호객 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혼탁이 도를 넘는 이 시점에서 나는 분명히 이 풍토는 정화되어야 하고, 될 것이라 믿는다.
이후에는, 어르신들이 받는 복지 제도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고, 미국 정부에서 내리는 이렇게 귀한 혜택을 감사히 받고, 계승해 나아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루의 단상을 정리 해 본다. 성인 데이케어는 분명 정과 행복이 있는 곳이고, 잘 유지되고 발전되어야 할 제도임에 틀림이 없다. 바른 의식을 갖고 이 귀한 제도를 잘 이어 나갈 수 있기를, 그리고 모든 어르신들이 하루 하루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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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창희/성인데이케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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