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행사는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되었다. 4일까지 전 국민 애도기간 중이라 모든 공연과 퍼포먼스는 중지되고 시민 타종인사만 참석하여 2025년 을사년을 밝히는 타종식을 거행하였다.
2025년 새해를 맞는 종소리는 “ 둥 두웅... 둥 두웅... ” 하면서 낮고 깊게 울렸다가 높은 음파는 사라지고 낮은 음파만 남아 잔잔한 여운을 주었다.
33번을 치는 것은 성곽도시인 서울이 파루(罷漏:새벽4시)에 33번 쳐서 사대문 문을 열고, 인정(人定:밤10시)에 28번 쳐서 문 닫는 시간을 알려준 것에서 유래한다. 파루는 불교의 수호신인 제석천이 이끄는 하늘의 삼십삼천(天)에서 나라의 태평, 국민의 무병장수, 평안을 기원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1월 1일 새벽, 종소리는 묵직하면서도 처연하게 종각에 모인 사람들의 가슴 속으로 퍼져나갔다. 작년 12월 초부터 놀라 넘어질 일이 연속 생기는 혼돈의 정치 속에 대참사까지 일어났으니 제발 올해는 무탈한 한 해를 소원하는 듯, 분위기는 진지했다.
보신각 타종 행사뿐 아니라 각 도시, 해안가, 동네 산의 새해맞이 행사는 대부분 취소되고 백화점이나 상가, 사거리마다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는 조의를 표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날, 행사장이나 지하철 대형 사고에 대비해 안전관리 요원과 응급요원 배치 등 안전관리 대책이 꼼꼼히 준비되었다. 혹여 일어날 시위나 행진에 대비해 지하철이 종각역을 무정차 통과하고 경찰차가 십여 대 이상 종각 주변에 대기하고 있는 것은 아직 항공기 사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시민들을 믿지 못했구나 싶었다.
그런데 정면 5칸, 측면 4칸 구조인 한옥 누각 보신각을 보면서 뭔가 불편했다. 1396년 창건되고 1979년 8월 재건된 보신각이 왜 그런지를 찾아보게 되었다.
첫째 이름이다. 각(閣)이란 명칭은 단층에만 붙이는 것인데 현재 중층으로 되어있다.
조선의 대표적인 시계 역할을 하던 종과 종을 걸고 있던 건물은 종로 사거리 한복판에 2층 종루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후 여러 번의 화재로 재건을 거듭, 단층으로 유지되면서 고종이 ‘보신각’이란 이름을 하사했다. 그런데 한국전쟁으로 전소되어 1979년 2층으로 재건되었는데 이름은 그대로 보신각, 그러니 모양과 이름이 맞지 않다.
더 맞지 않는 것은 보신각이 앉은 자리이다. 보신각은 교차로 한복판이나 네모반듯한 장소에 번 듯이 자리 잡아야 함에도 도로 확장으로 인해 있던 자리에서 뒤로 물러나다 보니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제집이 아니라 남의 집에 사는 것처럼 편안치 않다.
도심부 사거리 교차로의 모서리를 잘라 예각을 없애는 것을 ‘가각정비’라고 하는데 이는 한국 도시계획에만 있는 특이한 시도다. 1972년 구자춘 서울 시장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고 나중에 아예 제도화되어 전국의 도시계획에 이용되었다.
1960년대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이 길 가운데 홀로 나앉게 된 것도 세종로에서 이어지는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담을 뒤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 후 도로 한복판에 있는 문을 목수가 아닌 드잡이(무거운 것을 그대로 옮기거나 기울어가는 건축물을 바로 잡는 사람)가 문 자체를 통째로 조금씩 뒤로 옮겨 지금의 자리에 놓았다.
이처럼 문화재나 기념물(보신각은 새로 지은 것이라 문화재 지정을 받을 수 없다)들이 도시 개발 속에 수난을 당하고 있다.
심훈은 보신각을 소재로 시 ‘그날이 오면’에서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 날이/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두 개 골로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했다.
그토록 염원했던 광복이 온 지 80년이 되어 가지만 우리의 조국은 지금 어떠한 모습으로 그 앞에 서있는가? 반목과 질시와 갈등에, 참담한 사고까지 당해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서있는 우리들이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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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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