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나는 한 손에는 회의 자료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우산을 받치고 빠른 종종걸음과 느린 달리기를 번갈아 가면서 급히 가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2-3년마다 한 번 정도는 걷다가 넘어지는 것 같다. 멀쩡하게 걷다가 넘어지는 경우는 그렇게 드물지 않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이 아닌 동물들은 웬만하면 넘어지지 않는다.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동물들은 있겠다. 이들은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경우일 것이다. 그냥 멀쩡히 걸어가다가 순간 삐끗하여 넘어지는 사슴이나 열심히 뛰어가다가 순간 발이 엉켜서 넘어지는 영양은 상상할 수 없다. 넘어지면 순간 이들을 노려보던 사자에게 목숨을 내놓아야 할 테니 말이다.
우리는 특별히 아프거나 약하지 않아도, 몸이 멀쩡히 건강한데도 걸어가다가 넘어진다. 그 이유는 두 발로 걷기 때문이다. 두 발로 걷는다는 표현은 사실 아이러니다. 두 발로 걷는다고 하지만 두 발이 동시에 땅을 짚지 않는다. 한 걸음 뗄 때마다 한 발은 땅에서 떨어져서 공중에 떠 있는 동안 다른 발이 땅을 딛는다. 그러니 우리는 두 발로 걷는 내내 한 발로만 몸을 지탱한다. 한 발 한 발 바꿀 때마다 무게 중심이 이동하기 때문에 순간 균형을 잃고 넘어질 수 있는 것이다. 네 발로 걷는 동물들은 두 발로 균형을 잡기 때문에 훨씬 안정적이다.
점잖은 문명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넘어지면 주위에서 배려하고 창피함을 견뎌내기만 하면 되지만, 적군이 뒤쫓아오고 있는 전쟁터나, 맹수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자연 속에서는 넘어진다는 것은 곧 목숨을 내놓는다는 의미도 된다. 이렇게 부실한 움직임에 인생을 맡겨야 한다니. 인간의 두 발 걷기는 치열한 자연의 삶에서 상상하기 힘든 모드다.
인간에게는 두 발 걷기 외에는 뾰족하게 달리 움직일 방법이 없다. 하늘을 날지도 못하며, 나무를 타기에는 발이 마땅치 않고, 헤엄을 치려면 특별히 배우고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 그다지 빠르지도 않은 인간의 뒤를 맹수가 뒤쫓아 온다면 그냥 포기하는 편이 낫다. 아니 고민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먹힐 것이다. 인간은 그다지 빠르지도 않고 넘어질 위험도 있는 움직임에 올인했다.
인류 계통은 수백만 년을 멸종하지 않고 지금은 지구 생태계를 모두 파괴할 정도로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가 되었지만, 여전히 두 발 걷기에 의존해서 움직여야 한다. 두 발로 걷는 한 자칫 넘어질 위험성도 함께 할 수밖에 없다. 이제 와서 두 발로 걷는 대신 손을 땅에 대고 두 손 두 발로 걷기 시작할 수는 없으므로 그저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한 발로 섰을 때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근육을 단련해야 한다. 영어로 코어(core)라고 부르는 중심 근육을 별도로 단련하기는 쉽지 않지만, 일상에서 조금씩 훈련하기는 쉽다.
그중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연습은 ‘한 발로 서 있기’다. 우리는 두 발로 서서 있을 때가 은근히 많다. 어디 가나 줄 서서 기다려야 할 때가 많다. 그럴 때 짝다리를 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지 말자. 그 대신 슬쩍 한 다리를 들고 한 발로 서서 핸드폰을 들여다보자. 한 발로만 서는 일은 코어 단련에 최고다.
나는 처음에는 한 발을 살짝 땅에 닿을락 말락 할 정도로만 들었다. 남들의 눈을 의식해서였다. 그러다 보니 아무도 내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두 자신의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는 무릎을 들어 팔꿈치 쪽으로 가져가거나, 왼쪽 발목을 오른쪽 무릎에 대고 앉는 자세를 하는 등 별별 자세를 하면서 서 있곤 한다. 최고 운동이다. 여러분에게도 권한다.
새해에는 모두 중심을 잘 잡으면 좋겠다.
필자 이상희 교수는 서울대와 미시간대 대학원을 졸업한 한국인 고인류학 박사 1호로 세계적 인류학자다. 저서 ‘인류의 기원’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
이상희 UC 리버사이드 교수 인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