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를 배우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첼로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많이 망설였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쳐서 전공까지 생각했던 지라 악기를 다룬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매일 연습할 수 있을까? 대학교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매일 시간을 쪼개어 낼 수 있을까? 악기는 체력이고 정신력이다. 눈에 띄게 둔해진 몸과 머리로 악기를 새로 배워서 그럴듯한 수준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악기, 악보, 레슨비 등등을 충당할 재정적인 여유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리고 연습을 아무리 해도 안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타고난 몸과 타고난 재능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계속 망설이다가 2년 전 어느 날 그동안 알아보았던 첼로 선생님에게 무작정 이멜을 했다. 이 생각 저 생각하다 보면 죽을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일단 화살을 쏘고 봤다. 50대도 거의 끝나가는 지금 60이 되기 전에 시작하고 싶었다. 내 소개를 하고 완전 초보인 나를 학생으로 받아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흔쾌히 승낙하며 첫 레슨 날짜를 잡았다.
레슨 날짜를 잡으면서 아차 했다. 내게는 첼로가 없었다. 근처 악기점에 가서 대여 첼로를 구했다. 오랜 전통을 가진 악기점 주인은 2-3개의 첼로를 내주면서 소리를 내어보고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고르라고 했다. 한 번 첼로를 만져본 적도 없는 나였다. 소리를 내어보다니… 그냥 적당한 가격대의 첼로를 골랐다. 첼로는 생각보다 엄청나게 컸다. 조심조심 트렁크에 넣고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첼로 케이스에서 첼로를 꺼냈다. 어디 부딪힐까 봐, 떨어뜨릴까 봐, 심장이 떨리고 손도 떨렸다.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찾아서 소리를 내어보았다. 첼로는 왼손으로, 활은 오른손으로 잡는 것이었다. 활을 그어보았다. 그럴듯한 음이 나왔다. 어쩌면 내가 첼로 천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재클린 뒤프레. 장한나. 요요마.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거장들의 연주 동영상을 보면서 곧 나도 그렇게 연주할 날이 눈앞에 온 듯 기뻤다.
레슨을 시작하고 매일같이 연습했다. 첼로를 난생처음 만졌을 때, 처음 활을 현에 대고 그었을 때 흘러나오던 음으로 감동받았던 것은 그때뿐이었다. 막상 연습을 시작하니 한심한 소리가 찌그러져 나왔다.
악보를 읽는 것은 쉬웠다. 차라리 그게 문제였다. 악보를 보면 이 곡이 어떻게 곡인지, 어떤 소리가 어떻게 나와야 하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의 첼로 실력은 악보를 보면서 흐르는 내 머릿속의 음악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첼로 천재는 개뿔.
하지만 첼로 천재만이 첼로를 배울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제 첼로를 통해 엉뚱한 경험을 하고 있다. 평생 뭐든지 금방 배워서 금방 잘했다. 좋아하는 일은 당연히 잘했지만 싫어하는 일도 꽤 잘했다. 아마 첼로를 계속 해도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면 이는 꽤 드문 일일 것이다. 게다가 좋아하는 일인데 열심히 해도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면 이것은 내 일생에 단 한 번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계속해 보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해도 잘하지 못하는데 즐겁게 계속하는 일이 된다면 그 또한 그대로 좋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나이 탓이런가 싶다. 어렸을 때는, 젊었을 때는, 잘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뭐든지 하려면 잘해야 한다고, 1등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다.
나는 목표를 세웠다. 1만 시간 연습이 목표다. 숙련된 기술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이는 말콤 글래드웰이 남긴 말이라고 전해지지만, 과연 그런지 사실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여하튼 1만 시간 연습을 목표로 했다. 1만 시간을 채우기 전까지는 잘하느니 못하느니 평가하지 말자.
첼로 연습 시간을 기록하면서 매일의 일상을 채운다. 이제 첼로를 배우기 시작한 지 20개월이 되었다. 기록지를 보니 그동안 800시간을 연습했다. 앞으로 9,200시간을 더 연습하면 1만 시간이 된다. 20개월 동안 800시간을 연습한 추세로 계속 간다면 1만 시간을 연습하는 데에는 250개월이 걸린다. 이제 230개월 남았다. 거의 20년이다. 그때까지 내 몸과 정신을 잘 보듬어 지키려고 한다. 물론 사람 일은 바로 내일 일조차도 알 수 없지, 말이다. 그러니까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고 230개월 후의 일은 230개월 후에 생각하자. 오늘은 오늘을 연습한다.
필자 이상희 교수는 서울대와 미시간대 대학원을 졸업한 한국인 고인류학 박사 1호로 세계적 인류학자다. 저서 ‘인류의 기원’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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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 리버사이드 교수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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