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스물일곱 분의 임금 중에 그래도 군주다운 군주로 이름을 남긴 이는 사도세자의 아들로 22대 왕이 된 이산(李) 정조다. 그가 생전 이룬 업적이 적지 않은데 그중 하나가 수원성을 개축하고 그 이름을 화성(華城)이라 했다. 원래 수원화성의 개축은 군사적 목적이었다.
그러나 성이 완성된 후 조정 대신은 물론 백성들이 크게 놀란 것은 화성이라는 글자의 표현대로 성의 아름다움을 보고 놀랐다. 너무나 아름다운 성 앞에서 신하가 물었다. “성을 튼튼하게 만들면 그 목적을 다하는 것인데 어찌하여 성을 이렇듯 아름답게 만드셨나이까?” 왕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아름다움이 이기는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발상이요 군주다운 대답이 아닌가. 사람은 겉이 추하면 마음도 추해지기 쉽다. 집도 추레하면 거기 사는 사람도 자칫 추레해지기 쉽다. 하나님은 외모를 중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속사람을 중히 보신다는 어록을 인간들이 자주 인용하지만 그것은 신과 인간 사이에 놓인 대원칙인 동시에 보다 영적인 순서를 밝히신 말씀이다.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사람은 어디까지나 청결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하다못해 늘 보는 친구를 만날 때라도 거울을 보고 면도를 하고 머리를 빗지 않는가. 가게에 들어가서 동전을 바꿀 때도 정장을 한 사람에게 더 잘 바꿔준다는 말이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정조는 그 옛날에 무엇이 사람을 강하게 만들고 자신 있는 국가가 되는가를 꿰뚫고 있었다. 본받아야할 자세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선포한 셈이다. 그냥 돌덩어리로 성을 쌓고 흙을 발라 이어놓는 성이 아니라 그 성을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계획 하에 돌 하나 흙덩이 하나 모양을 다듬고 규격을 맞춰 완벽하게 틈을 메우고 기치를 찬란하게 벌려 그 아름다움만으로도 적을 제압하고 기세를 끊어내겠다는 정조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때 크리스마스가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이다. 만약 크리스마스가 없는 연말을 상상해보라. 일찍 해가 지고 컴컴한 분위기 속에 영하의 추위는 시작되고 심지어 세찬 눈보라와 진눈개비까지 사정없이 뿌려대는 날씨가 12월을 통과한다면 얼마나 을씨년스러울 것인가.
성탄절의 밝고 환한 장식도 없고 마음을 설레게하는 캐롤도 들리지 않고 크리스마스 자체가 아예 없는 그런 12월의 겨울과 추위, 동토의 계절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나 2024년에도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우리에게 왔고 굳건히 12월을 지키고 있다. 이 지면을 빌려 새삼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설파하려는 건 아니다. 크리스마스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아름다운 날이 되어야 어둠의 세력이 범접하지 못한다. 마음이 비록 허전하다할지라도 성탄절의 아름다운 성채를 준비한다면 다가올 한 해를 이기는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기 예수가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이미 충분히 아름답지만 성탄절의 아름다움은 우리 모두를 하나 되게 할 수 있다.
록펠러센터 앞에 휘황찬란한 트리가 설치되었다는 기사가 나면서부터 “아, 어김없이 또 아름다운 날이 왔구나. 익숙한 캐럴들이 울려 퍼지며 거실 한 쪽에 세운 키 작은 트리가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주곤 했는데 세월이 갈수록 그런 풍경이 사라지는 듯 아쉬움이 밀려온다.
사람들은 아름다움보다 실용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성탄절의 반짝이는 장식이 도시 시골 할 것 없이 가득 채우고 메리 크리스마스가 선명한 카드를 주고받던 날은 사라졌다.
거리에 청춘남녀가 흐르며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그 광경만으로도 아름다웠던 날은 어디로 가고 셀폰을 들고 혼잣말만하는 건조한 분위기가 12월을 점령했다. 사람은 때때로 아이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이 시대는 그런 순수를 거부한다.
아름다움으로 적을 이긴다는 화성, 그 성채는 사라지려는가.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는 아이에게 산타클로스가 되어 선물을 주고 싶지만 선물 받을 손자가 너무 커버렸다. 그러건 말건 성탄절은 정녕 아름다워야 한다. 차라리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그런 12월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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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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