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가을’ 을 느끼려면 ‘커피 프린스 1호점’ 드라마 촬영지로 가라고 했다. 그곳이 까페 겸 갤러리 ‘산모퉁이’라는 것이다. 과거 깊은 산속 절을 찾아가면 사극 드라마 촬영지라고 절 입구에 대문짝하게 배우들 사진이 소개된 것이 정말 싫었는데 이곳은 워낙 풍광이 아름다워 드라마보다 자연이 먼저 보였다.
기록적인 이번 여름의 고온에 지쳐 전국의 단풍이 곱게 들지 못했다고 했다. 다소 칙칙한 단풍이라고 해도, 그래도 이곳의 단풍 구경은 해야지 하고 북악산 자락의 까페를 찾아갔다.
총 3개층과 지하로 된 산모퉁이 까페는 실내에서는 통유리창 너머로, 야외 테라스에서는 눈앞에 보이는 노랗고 빨갛게 단풍 든 북악산, 나무가 바위가 빛나는 인왕산, 부암동 복고풍 동네, 멀리 서울의 도심도 보이는 경치가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카페 왼쪽으로는 성곽이 보이는 북악산(그 너머가 청와대) 오른쪽으로 인왕산 뒷자락이다.
부암동 한가운데 자리한 이 카페는 2007년 한여름동안 인기 절찬리에 방영된 MBC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에 나오는 최한성(이선균 분)의 집이다.
최한결(공유 분)은 식품회사의 후계자로 커피프린스 1호점 대표이다. 한결은 집안에서 밀어붙이는 결혼을 피하고자 짧은 머리에 털털한 성격의 고은찬(윤은혜 분)과 게이 커플 연기를 한다. 그러나 저도 모르게 은찬을 좋아하게 되고 카페에서 일하는 은찬도 그를 좋아하나 자신을 남자로 알고있는 한결에게 차마 고백을 못한다. 사촌형 최한성(이선균 분)은 음악감독으로 멋지게 나오며 그를 배신했다가 다시 돌아온 화가 한유주(채정안 분)는 미워할 수 없는 연인으로 나온다.
카페 안 한쪽에 드라마에 출연한 이 네 배우의 사인과 얼굴 그림, 드라마에 나온 모습을 담은 사진이 붙여져 있다.
그 여름, 공유와 윤은혜, 이선균과 채정안 두 커플을 내세워 전문직들의 성장통과 사랑을 다룬 유쾌 발랄한 청춘 드라마는 동성애, 남장여장 등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아마 이 드라마로 인해 바리스타 직업이 각광받게 되고 오늘날 두어집 건너 커피샵이 있게한 기폭제가 되었을 것이다.
지하에는 장난감 피규어, 인형, 드럼, 개와 강아지 인형들이 놓인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에 ‘커피프린스 제1호점’ 드라마가 방영 중인 뚱뚱한 TV가 놓여있다. 등장 인물들이 모두 앳되고 풋풋함이 묻어나 벌써 20여 년이 되어가네 하면서 고 이선균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
이선균이 박동훈 역으로 나온 2018년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드라마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파스타’, ‘골든타임’뿐 아니라 영화 ‘기생충’으로 배우 최고의 영예를 누리던 그 시절, 얼마나 행복한 나날이었을까.
그러나 실수를 했고 협박을 당했으며 수사 내용이 유출되면서 무차별적인 사생활 폭로는 인격모독이 아닌 인격말살이었다. 반듯한 이미지는 하루아침에 땅에 떨어지고 작년 12월 어느 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그의 불행에 영화인들은 다들 슬퍼했다.
2023년 방송국 연예대상, 연기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동료들은 검은 옷을 입고 참여했고 수상소감으로 저마다 추모의 마음을, 그분께 이 상을 드리겠다고 할 정도였다. 미국배우조합상 시상식과 올 3월 열린 제96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도 그를 추모했다.
지난 10월2일 부산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열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은 이선균을 추모하며 시작되었다. 한국영화 공로상으로 고 이선균이 선정되고 파주, 끝까지 간다, 나의 아저씨 등 대표작 6편을 상영하는 특별전 ‘고운 사람, 이선균’ 을 열었다.
이렇게 멋진 절경 속에서 명랑한 한때를 보냈던 그는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젊은 그대로 영원히 살아있다. 커피 프린스 1호점 촬영의 추억과 2019년 ‘기생충’의 박사장 역으로 아카데미시상식 무대에 올랐던 기억,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기억만 그에게 남아있기를. 아듀, 이선균! “이제는 편안함에 이르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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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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