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떻게 되려는지 “공분”(公憤)이 사라지는 시대와 사회가 되었다. 분개할 사안에도 분개하지 못하고 바로 잡아야할 문제도 시선이 두려워 꼬리를 내리기에 바쁘다.
서울에서 한 외국인이 편의점에 들어와 라면을 먹고 국물을 공연히 바닥에 쏟는 것도 모자라 소란을 피우며 영상을 찍어댔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러자 한 행인이 그 외국인 면상에 주먹을 날리고 셀 폰을 빼앗아 집어던진 후 유유히 사라졌다는 기사다.
나는 그 기사를 보고 근자에 보지 못했던 통쾌함을 만끽했는데 동시에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다. 이 의로운 청년이 붙잡혀 개나 걸이나 입에 올리는 해괴한 인권의 희생양이 되지는 않을까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대세는 남의 일에 참견하면 안 된다. 남의 가게에서 행패를 부리건 말건, 누가 무슨 말을 하건 말건 장님인 듯 귀머거리인 듯 지나쳐야 한다. 주먹으로 안면을 강타한 청년이 종적을 감췄으니 망정이지 만약 체포되면 경찰은 남의 업소에서 소란을 피운 외국인은 훈방일 테고 청년은 폭행으로 일단 수갑을 찬 후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을지 모른다. 피해자가 졸지에 가해자가 되는 “경우 없는 경우”가 너무나 많아졌기 때문이다.
더러 과할 때도 없지 않지만 뉴욕경찰의 강력한 공권력이 부러울 때가 적지 않다. 인권이 뭔지 그 참뜻을 모르는 해괴한 작태가 “내 자유를 건들지 마라” 는 논리에 충실하여 남이 어찌 생각하든 내 말만 하는 경박한 세상이 펼쳐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여 근간에 자주 쓰는 한국인의 말버릇에 토를 달고 싶어 이 글을 쓴다. 그냥 모르는 척 살아가도 아무 지장이 없겠지만 오지랖을 한번 부리기로 했다.
요즘 넷플릭스에 요리 경연을 주제로 ‘흑백요리사’라는 프로가 인기리에 방영된 적이 있었다.
그 후 프랑스 사람으로 요리 최고 훈장까지 받고 미슐렝 셰프라는 자리에 오른 분이 서울에 와서 흑백대전에 대한 자기의 소감과 자신이 요리에 임하는 자세를 밝혔다. 전후맥락을 보면 그 프로를 디스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자기가 요리를 만드는 자세에 대한 지나친 과신이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음식을 만들 때 “영혼을 담는다는 것”이었고 그 예능프로에 나온 셰프들의 음식은 영혼이 없는 음식이 대부분이라는 논조였다. 이 무슨 해괴하기 짝이 없는 부박(浮薄)한 언사인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근간 한국은 영혼을 주제로 말을 많이 하는 나라다. 요새는 좀 하향곡선이지만 그래도 한국만한 기독교 국가가 흔치 않다. 그런 까닭인지 “영혼”이라는 단어가 대화에 많이 등장한다.
프랑스 셰프도 그런 분위기를 알아차려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자기 요리에는 영혼이 있다고 감히 말했다. 어불성설이다. 영혼은 그렇게 쉽게 다루는 분야가 아니다. 멋을 부리노라 하는 말이라고 치부해도 영혼은 멋으로도 장난으로도 취급할 말이 아니다. 요리는 맛으로 승부할 뿐이다. “나는 정성껏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라고 말하면 충분하고 족하다.
한국사회에서는 “영끌”이란 말이 유행한다. 영혼을 끌어 모은다, 라는 섬뜩한 말인데 태연하게들 사용한다 “영끌로 집을 장만 했다”느니, “영혼 수선공”이니, “영혼을 담아 사랑한다.”느니 별 이상한 말들을 남발하고 있다.
내 맘대로 동원하는 영혼은 없다. 음식을 만들 때 영혼을 담는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그렇게 영혼까지 담은 음식을 어찌 겁도 없이 먹어치운단 말인가. 영혼이 무슨 조미료인가.
영혼을 갈아서 집을 사고 영혼을 바쳐 사랑을 하고 영혼을 요리에 섞는다면 그 영혼은 나중에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선지 한국은 요즘 무당, 역술인 인구가 백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문이고 영화도 드라마도 소설도 귀신이 판을 친다. 천국 지옥을 많이 말할 것 같은 교회는 오히려 저들에 비해 자제하는 편이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영혼이야말로 고귀한 존재임을 명심하자. 가볍기 짝이 없는 세상사에 끼워 팔기 식으로 남발하지 말자. 내 영혼은 나를 이끄는 힘의 원천임을 인식하자. 육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함부로 취급하는 경망한 언행을 삼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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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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