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법칙 하나가 있다. “모든 것의 90%는 쓰레기다.” 너무 극단적인 진단으로 보이지만 움직일 수 없는 진리다. 지금 당장은 고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라는 세월 속에서 어느 날 넝마가 될 운명은 확실하다.
조금 오래된 이야기지만 한국 신세계백화점에서 자선 경매가 있었다. 당시 잘 나가는 스타들, 말하자면 유명 배우, 탤런트, 가수들이 쓰던 옷가지들을 받아서 바자회처럼 내놓았다.
그때 불티나게 팔려나간 인기 품목이 그들이 입고 사용했던 잠옷, 수건, 속옷, 양말 같은 것들이었다는 후일담이다. 그 옷들의 운명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아무리 인기인이지만 그들이 입던 것을 사서 자기가 다시 입었을 것인가. 아니면 보석함에 보관했을까.
아마 모르면 몰라도 며칠 있다가 걸레가 되어 방구석을 돌아다니다가 벌써 쓰레기더미와 함께 묻혀 사라졌을 것이다. 그렇다. 시간차로 모든 것은 쓰레기가 된다. 우리 인생도 이 생에 여행을 온 셈인데 그렇다면 너 나 할 것 없이 집으로 돌아갈 운명이다. 그러함에도 여기서 영원히 살 것처럼 온갖 잡동사니를 껴안고 살아가니 딱한 일이다.
한비야라는 여행가가 말한 여행의 원칙이 있다. “즐거운 여행을 가려면 첫째도 둘째도, 짐을 줄여라. 줄이고 줄인 후 여행을 떠나기 직전 다시 그 가방을 열고 덜 중요하다고 생각 되는 것을 또 꺼내라. 그대의 짐이 가벼울 수록 행복한 여행이 될 것이다.” 우리 인생을 뭐라고 하는가. 순간처럼 짧게 관광을 왔다가 다시 어딘가로 가는 과객(過客)이라 말하지 않는가. 그런 여행객이 짐을 바리바리 싣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방랑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분명히 돌아갈 텐데 자기는 안 돌아갈 사람인 것처럼.
가을이 되니 겨울을 생각하며 옷 정리도 하고 차제에 책 정리도 하게 된다. 몇 년 전 은퇴를 하며 일차로 총 정리를 했는데도 아직 버려야할 것들이 나왔다. 그 까닭은 미련(未練)이다. 끊고 버리고 정리를 한다하면서도 한 줌의 미련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다. 돌아갈 곳으로 가는 순간 다 쓸데없는 것들이다. 몸 하나 정갈하게 간수하다가 여행을 끝내면 될 터인데 90%의 쓰레기에 연연하고 있는 자아가 처연하다.
그런 미련의 정체는 욕심과 허영이다. 여행하는 이들을 위한 시금석(試金石)과도 같은 명언이 있다. “여행을 위해 아무 것도 가지지 마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마라.” 여행은 2박 3일이 될 수도 있고 열흘일 수도 있다. 짧고 긴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인생의 총체적 여정이 이에 해당될 수 있음이다. 모름지기 단순하고 가벼운 짐을 꾸리라는 것이 주문의 요체(要諦)다.
예컨대 지팡이는 무엇인가. 의지하는 모든 것들이다. 인생이라는 여행 중에 과다히 의지하는 존재를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명예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고 자식일 수도 있다. 다 믿을 것이 못되는 대상이다. 다른 조건들은 모두 여기서 파생하는 부연(敷衍)이다.
뉴욕이라는 잡지에 이런 만화가 실렸었다. 큰 트럭이 짐을 싣고 가는데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이 트럭의 적재량은 10톤이고 이 다리는 10톤까지만 통과하는 다리다. 트럭 운전사는 출발하면서 10톤을 맞췄으니 걱정이 없다. 그런데 막 다리 중간 쯤 갔을 때, 트럭에 실은 짐 꼭대기 위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 와 앉았다.
휘파람을 불며 신나게 달리는 운전기사와 그 트럭은 그만 다리와 함께 무너지고 말았다는 해학이다.
나도 모르는 욕심, 허영, 자랑의 뭉치가 여행 짐 속에 슬쩍 끼어 들 때 결국은 무너지고 만다는 메시지다. 살다보면 인생과 삶의 관록이 축적 되면서 쌓아둔 불필요한 옷들을 버리지 못한다.
읽지도 않는 두꺼운 책, 장식용으로 전락한 원서, 색이 바랜 상장 졸업장, 의지했던 닳아빠진 지팡이. 그리고 이것저것 집어넣었던 명예와 자랑의 주머니들. 여행의 종착역이 불시에 닥칠 때 방해가 될 것들을 지금 버리자. 지금 버려버리자. 홀가분한 차림으로 귀가(歸家)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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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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