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창을 닫는 것으로 하루 일이 끝난다. 곧장 산책을 나선다. 산책 코스는 집에서 가까운 그린벨트 지역이다. 블루베리 농장을 끼고 있는 호수 둘레길은 운동 삼아 걷기에 좋다. 바람에 윤슬이 부드럽게 반짝이고 청둥오리들이 한가하게 노닌다. 계절을 알리는 자연의 향기와 더불어 공기가 더없이 맑다. 사박사박 발밑에서 나는 굵은 모래 밟히는 소리가 듣기 좋다.
호숫가에 다다르면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편이든가 왼편으로 꺾인 길을 택해서 호수를 돌게 돼 있다. 혼자 산책할 때, 나는 쭉 직진해서 왼쪽으로 호수를 돌아 나오는 길을 택한다. 어쩌다 남편과 같이 걸으면 남편은 왜 맨날 같은 쪽으로 가냐며 다른 방향으로 가자고 한다. 남편의 말을 따라 다른 쪽 길을 택해 시계 방향으로 호숫가를 돈 적이 있다. 방향 차이로 다소 낯설어진 풍경 때문일까, 습관의 문제였을까? 뭔가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래서인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반시계 방향을 고집한다.
사람의 뇌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 늘 경계하고 위험이 없는지 점검한다고 한다. 습관으로 굳어진 행동양식은 뇌가 복잡한 판단에 수고하지 않아도 되는 방향으로 선택된다. 그렇다면 내가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것도 게으른 뇌의 정략적 선택일까. 나는 내 선택의 숨은 동기가 궁금했다.
일상을 되돌아보니 나는 반시계 방향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수학에서 좌표 사분면은 반시계 방향으로 순서가 정해진다. 수도꼭지 트는 방향도 반시계 방향이고, 육상에서 선수들이 트랙을 도는 방향도 반시계 방향이다. 글씨 쓸 때 한글을 쓰는 순서는 어떠한가. 그것도 반시계 방향으로 돌려쓴다.
거실에 호야라는 식물이 있다. 하나 같이 지지대를 왼쪽으로 감아 올라간다. 호기심에 줄기를 풀어 시계 방향으로 꼬아 두었더니 다음날 줄기가 엉거주춤하게 돌아서 다시 반시계 방향으로 올라간다. 반시계 방향이 편한 것이 우연히 생긴 집단의 습관이 아니라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시계 방향이 정상적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구가 서에서 동으로 돌기에 그 그림자의 진행 방향을 통해 시계 방향을 만들어 냈다. 지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즉 반시계 방향으로 자전한다. 태풍이 부는 방향도 반시계 방향이다. 우연히 생긴 것 같은 습관도 사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동양철학에서는 왼쪽이 양을, 오른쪽이 음을 상징한다.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높은 이유다. 왼쪽이 먼저다. 구보 때도 왼발, 왼발을 외쳤었다. 태극기의 태극 문양도 왼쪽으로 도는 형상이다. 무용할 때 춤을 추는 원도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간다. 심장은 왼쪽에서 뛴다.
불교에서는 서쪽을 이상향으로 생각했고,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에덴의 동쪽으로 추방하였다. 혹시 창조주의 질서에도 왼쪽으로 도는 반시계 방향의 질서를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관점으로 자연 현상과 사회적 규칙을 생각해 보니 반시계 방향이 나를 편하게 하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이 아니다. 인도네시아에는 적도선이 지나는 곳이 있는데 관광객들이 재미있는 실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적도선 위에서 물을 내리면 물은 회전하지 않고 빠진다고 한다. 북쪽으로 몇 걸음 옮겨서 싱크대에 물을 내리면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며 물이 빠지고, 적도선에서 남쪽으로 몇 걸음 옮겨서 같은 실험을 하면 시계 방향으로 물이 회전하며 내려간다고 한다. 그러니 반시계 방향의 원리가 잘 작동 한다고 하는 것도 북반구에 한정된 시각이다.
‘반하다’는 말은 왠지 뭔가 거스르거나 맞선 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정반합(正反合)에서처럼 정과 대치되는 개념이다. 하지만 그 자체는 부정적인 뜻을 내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태극 문양에서 볼 수 있듯이 역동적인 힘의 균형 유지하려는 질서를 본다. 인생의 방향도 그렇지 싶다. 대부분이 어느 한쪽으로 간다고 해서 다른 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반대라고 말할 수 없다. 각 개인이 선택한 편한 방식으로 살아가는데, 어느 길이 맞다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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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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