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뉴욕 맨하탄 메트뮤지엄에서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 패션의 재조명(Sleeping Beauties, ReawaKening Fashion) ’ 전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입장티켓 외에 따로 예약을 해야할 정도로 전시회는 인기다. 의상 전체는 육지(Land), 바다(Sea), 하늘(Sky), 3개 세션으로 나눠 전시된다.
오트쿠튀르(Haute coutre:고급맞춤디자인)의 아버지인 영국 패션디자이너 찰스 프레데릭 워스(1825~1895)의 19세기 무도회 가운, 마들렌 비오네의 이브닝 드레스, 크리스찬 디오르와 알렉산더 맥퀸의 가운 등 역사적인 소장품부터 현대 디자이너까지, 17세기부터 21세기의 작품 250여 점을 볼 수 있다.
자연을 주제로 해서인지 메트뮤지엄 전체에 환하게 꽃이 핀 것같다. 9월2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회가 특별난 것은 그냥 멋있는 의상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오감을 충족시킨다는데 있다. 냄새를 채취한 공간, 소리를 증폭해놓은 공간 등 보고 만지고 듣고 냄새를 맡게 한다. 이를테면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여 감각을 일깨운다.
디올의 정원, 반고흐의 화원에서는 꽃의 향기를 향 페인트로 변환시켜 벽에 바르고 관람객이 손으로 벽을 만져 드레스의 향을 맡게 한다. 대형 테이블 위의 드레스는 보호 차원에서 눕혀서 전시되고 오래되어 손상될 위험이 있는 드레스는 평면으로 전시된다. 그 드레스는 컴퓨터 이미지와 홀로그램을 사용하여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시킨다.
향이 나는 꽃을 직물 자체에 넣어 드레스를 만들었다면 그 향을 드레스 앞에 비치된 유리관의 뚜껑을 열고 맡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귀리, 호밀을 심은 정원의 흙 속에 파묻힌 코트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서서히 삭아져 가는 모습을 구현, 패션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전시회는 증강현실, 인공지능, 애니메이션과 음향 등의 기술을 통해 다채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패션과 첨단기술의 만남인 ‘슬리핑 뷰티’ 전을 위한 기금모금행사 2024년 메트 갈라가 지난 5월6일 메트뮤지엄에서 열렸다.
갈라의 의장은 그 유명한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로 그녀가 직접 패션, 영화, 정치, 스포츠계의 유명인사 450여 명의 초청명단을 선정한다. 한국 유명인도 간혹 초청되는데 올해는 그룹 스트레이 키즈, 블랙핑크 제니, 스티븐 연이 등장했다.
티켓 가격은 7만5,000달러, 한 테이블은 수십만~100만 달러 정도인데, 돈이 아무리 많아도 유명인사가 아니면 초청장을 받을 수 없다. 소수의 선택된 패션피플은 어떤 옷을 입고 올지 미리 알려주어야 한다.
1948년부터 시작된 메트 갈라는 1999년부터 안나 윈투어가 맡아 규모가 커지면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패션행사가 되었다. 패션계에서 성공하려면 안나 윈투어의 축복이 있어야 한다고 할 정도다. 뉴욕이 패션의 중심지로 부상한 데는 그녀의 영향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1943년부터 뉴욕 패션위크를 개최해 오고 있는 뉴욕은 런던, 밀라노, 파리와 함께 21세기 주요 패션중심지 ‘빅4’에 든다. 요즘 젊은층은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즉 최신 트렌드를 신속하게 반영했으나 가격이 저렴한 패션을 선호한다. 부자들은 여전히 오트구틔르 패션을 선호하나 유명인 중에는 고가 패션과 저가 패션을 잘 조화시켜 입음으로써 매스컴에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패스트 패션이 저개발국의 부당노동행위와 쓰레기처럼 쌓인 일회용 옷들의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물론 메트 갈라가 열리는 뮤지엄 바깥 도로에서도 ‘가자지구에 폭탄이 떨어지고 있다’는 시위의 목소리가 있었다.
메트 갈라는 현재의 정치 경제 문화적 이슈 및 트렌드를 반영해 오고 있다. 이번 주제가 자연인 것을 보면 사람들이 삭막한 도시 문명에 지쳐서 자연주의로 돌아가고 싶은 모양이다.
현재, 미국을 비롯 전 유럽에 극우주의가 득세하면서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아마도 내년 메트 갈라의 주제는 ‘전쟁과 평화’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러면 세계대전 때처럼 밀리터리 룩이 유행할 수 있는데 그것만은 사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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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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