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항중인 선박이 화물을 싣지 않았을 때 선체가 물에 잠기는 깊이가 낮아져 배의 균형을 잡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화물을 싣지 않은 빈배일 때도 안전하게 항해가 가능하도록 선체의 밸러스트 탱크(ballast tank)와 일부 화물창에 바닷물을 채운다. 짐을 채운 뒤에는 다시 배출하는 바닷물을 선박평형수(ballast water)라고 한다. 평형수가 없으면 배가 옆으로 기울어 침몰하게 된다.
평형수로 사용하는 바닷물의 염분농도는 평균 3.5% 정도이다. 그 미미한 소금기가 드넓은 바다를 두루 정화(淨化)하면서 무수한 해양생물들을 살아 숨 쉬게 한다.
우리의 삶을 고해(苦海)와 같다고 말을 한다. 파도가 거칠게 일렁이는 고통의 바다(苦海)라는 뜻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은 근심 걱정 불안 등 괴로움이 끝나지 않는다. 하나의 고통(번민)이 끝나면 또 다른 고통(번민)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바다의 염분 같은 정화의 촉매제가 삶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빈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정화제는 사랑일 수도 있고 희망일 수도 있다. 사랑이 없다면, 희망이 없다면 괴로운 세상살이를 이어나갈 에너지도 고갈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사랑보다 희망보다 더 소중한 정화의 촉매제가 있다. 탐욕과 거짓의 쓰레기더미를 뚫고 나오는 자정(自淨)의 목소리, 바닷물의 소금기와도 같은 진실의 외침이다. 그 진실의 목소리는 사회의 권력층이나 시대의 지배계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진실의 외침으로 시대와 사회를 정화하는 것은 이름 없는 소수(少數)의 무리, 소외된 양심의 목소리다. 그것은 대중의 오해, 권력의 박해 속에서 목숨 걸고 진실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광야의 소수였다. 결코 부패하지 않는 평형수가 균형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더(Outsider; 피지배층, 소수)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영국 작가 콜린 윌슨(Colin Wilson)은 니체·도스토예프스키·톨스토이·고흐·카프카·카뮈·사르트르·헤르만 헤세 등 문인·철학자·예술가들의 삶을 분석하고 그들을 아웃사이더라고 불렀다.
아웃사이더는 깨어나서 혼돈을 본 인간이자 병들어 있는 세상에서 자기가 자유롭지 않음을 깨닫고 고민하는 사람이다. 역사는 아웃사이더에 의해 정화되고 변혁되고 진전되어 왔다.
혹독한 핍박과 고난을 기꺼이 무릅쓴 진실의 순교자들을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The Creative Minority)라고 이름 지었다.
국교(國敎) 신봉을 강요하는 국왕의 칙령을 거부하고 북미대륙으로 건너가 부모형제의 주검 곁에서 땅을 갈고 씨를 뿌린 청교도들도 그 창조적 소수였다.
민주주의라는 배의 평형수 역할을 하는 균형추가 대중사회의 아웃사이더인 창조적 소수다.
다수 유권자의 지지로 권좌에 오른 대통령이 평형수 같은 소수의 쓰디 쓴 충언을 내치고 가족이나 밀실 측근의 나긋나긋한 속삭임에 귀 기울인다면, 국회 다수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민생 돌보기를 제치고 오로지 특정인 한 사람 돌보기에 온갖 입법권력을 휘두른다면, 그것은 양적 민주주의의 폐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반민주적 후퇴요, 질적 퇴보일 따름이다.
정치집단의 거짓·위선을 폭로하고 대중사회의 일탈·왜곡을 질책하는 창조적 소수가 지금 한국 사회에 있다. 목회자, 고급장교 군인, 고위간부 경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젊은이 등.
그들은 세상에 이끌려가는 수동적 다수의 인사이더(지배층, 특권층)가 아니라 세상을 이끌어가는 능동적 소수의 아웃사이더들이다. 그렇지만 지금 소외된 자리야말로 미래의 꿈이 튼실한 열매로 익어가는 생명의 터전이다. 3.5%의 미미한 소금기 덕분에 수많은 해양생물들이 숨 쉬며 살아갈 수 있듯이, 그들 아웃사이더 덕분에 인류 역사는 정화되고 한국 사회는 전진해 간다.
오늘 한국의 현실에서 창조적 소수, 능동적 이방인, 자유민주사회의 평형수인 아웃사이더, 그 소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절실하고 변화와 변혁이 필요한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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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모 워싱턴산악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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