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용기 있는 사퇴(辭退), 신선한 양보(讓步)를 보았다. 며칠 전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직을 전격 사퇴하였다. 미국 현대사에서 당내 경선에서 이긴 현직 대통령이 후보직을 사퇴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 한다. 말 그대로 초유(初有)의 일이다. 그는 민주당 대선 후보직 사퇴를 발표하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후보 승계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고령(高齡)과 건강상태에 대한 약점 노출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듯하다.
굳이 사퇴할 의무는 없지만, 민주당의 대선 승리와 미국의 민주적 가치를 지켜내려는 충정에서 사퇴했다는 점에서, 그의 사퇴를 아름다운 양보라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 재선의 기회를 양보한다는 게 어찌 그리 쉬운 일인가? 아마도 바이든은 인생에서 가장 깊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 가운데 나이듦에서 오는 인생의 한계와 무상을 느꼈을 것이며, 냉정하게 사퇴를 주장하는 가까운 정치적 동지들에게서 인간적 비정함과 서운함도 느꼈을 것이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에게‘이 결정을 내린 용기와 책임감, 사명감을 높이 평가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프랑스 대통령의 서한은 외교적 레토릭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으로 깊은 고뇌 가운데 어려운 결정을 내린 바이든의 양보에 대한 진심 어린 위로이자 심심한 찬사일 것이다.
양보는 법으로 강제할 수 없다. 자발적이어야 하고 주체적이어야 한다. 양보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이나 대의(大義)를 위하여, 자신의 주장이나 생각을 내려 놓고 다른 이의 의견을 쫓는 것, 길이나 자리 혹은 물건을 내어주는 일, 자신의 이익이나 권리를 내려 놓는 일 등을 뜻한다.
바이든 대통령을 통하여 요즘 세상에서 보기 드문 양보를 보았다. 물론 중국 요순(堯舜) 시대에 왕국을 주겠다고 해도 사양하고 산으로 들어간 허유(許由)같은 은자(隱者)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는 전설에 가깝다. 1987년 한국에서도 두 유력한 야당 대선 후보가 아름다운 양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안타깝게 무산되었다. 권력이나 이권(利權)과 관련된 양보의 어려움이다.
성경에 양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브라함이 많은 식솔들과 함께 살아갈 거주지를 선택할 때, 그는 선택권을 조카 롯에게 양보한다. “… 네가 왼쪽을 차지하면 나는 오른쪽을 가지겠고, 네가 오른쪽을 원하면 나는 왼쪽을 택하겠다."(창세13:9) 결코 쉽지 않은 아름다운 양보다. 두 여인이 한 아기를 두고 서로 자기 자식이라고 주장하며 물러섬이 없자, 솔로몬 왕이 살아있는 아기를 둘로 나눠 반쪽식 가지라 판결을 내리자, 아기를 낳은 어머니가 양보를 한다.“… 살아있는 아기를 저 여자에게 주시고, 아이를 죽이지만은 마십시오”(열왕상 3:26) 모성애에서 나온 애절하고 숭고한 양보다.
양보는 동북아에서도 매우 중요한 가치였다. 공자는 “능이예양위국호能以禮讓爲國乎? 하유何有? 예와 겸양(양보)으로써 나라를 잘 다스린다면, 도대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논어, 이인편) 공자는 선비와 통치자의 미덕으로 양보를 들었다. 맹자도 겸손하여 남에게 사양할 줄 아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을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기본 감정으로 보았다. 채근담에도 “처세양일보위고(處世讓一步爲高) 퇴보즉진보적장본(退步卽進步的張本)”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한 걸음 사양함(양보함)을 높다고 하는데, 이는 한 걸음 물러섬은 곧 몇 걸음 나아가는 바탕이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양보가 개인의 내면과 공동체의 질적 발전을 가져 온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남의 양보는 쉬워 보여도 나의 양보는 어렵다. 그럼에도 양보의 미덕이 필요하다. 양보는 힘이 없거나 상황에 밀려 어쩔 수 없이 하는 행동이 아니다. 양보는 이웃을 배려하고, 공동체의 대의를 존중하고, 하늘의 뜻을 받드는 마음에서 나온다. 양보는 대의를 위하여 물러설 줄 아는 큰 마음의 표현이다. 양보는 욕심과 야망을 내려 놓은 빈(虛)마음에서 나온다. 양보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려는’따듯한 마음, 깊은 마음, 아름다운 마음의 표현이다. 양보는 개인의 성품을 완성시키고, 대중적 삶의 질을 드높인다. 양보는 하늘의 뜻을 이루게도 한다. 양보는 참 사람다움의 표현이다. 양보는 자신의 이기성을 극복하고, 이웃과 공동체와 세상을 따듯하고 아름답게하는, 품격있고 멋스런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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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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