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발표된 이글스의 유명 팝송인 ‘호텔 캘리포니아’는 후렴구 내내 ‘호텔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외치다가 정작 마지막 소절에서는 ‘체크아웃을 할 수는 있겠지만 떠날 수는 없다’는 가사로 끝난다. 이글스의 이 가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정책 딜레마를 설명할 때 종종 인용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정책 소통 분야 연구의 권위자로 평가받는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가 이를 인용했다. 그는 만약 연준이 성명이나 정책 결정 내용을 간략하게만 알리고 풍부한 맥락을 설명하지 않는다면 시장은 성명 문구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해진다고 지적했다. 그렇게 될 경우 연준은 시장의 예민한 반응 때문에 정작 필요한 변화를 적시에 표현하지 못할 리스크가 커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통화정책이 들어올 수는 있지만 나갈 수는 없는 ‘호텔 캘리포니아’의 딜레마에 빠져들게 된다는 논리다.
메스터 총재가 주문한 것은 결국 시장과의 더 많은 소통이다. 이미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때마다 성명을 발표하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45분가량 기자회견을 매번 진행하는 등 전 세계 중앙은행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 19명의 FOMC 위원들은 수시로 언론과 접촉하고 대중 연설을 통해 통화정책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말한다. 이미 많은 소통 채널을 운영하고 있지만 더 치열하게 소통의 형식과 내용을 고민하고 있다.
이는 연준뿐 아니라 미국의 금융시장을 관통하는 고유의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는 주요 상장사 최고경영자(CEO)들이 방송 출연이나 대중 강연을 통해 회사 비전과 성장 계획을 직접 설명한다. 코미디언이 진행하는 팟캐스트까지 가리지 않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물론, 젠슨 황 엔비디아 CEO도 올 3월 미디어 간담회를 열고 사업 현황과 중장기 계획을 소상히 설명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 브라이언 모이니한 뱅크오브아메리카 CEO도 언론의 단골 손님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회사 주가에 좋은 이야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올해 연례 주주총회에서 투자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는 고충을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다.
이렇듯 솔직한 소통 방식이 과연 득이 될까. 메스터 총재는 “(더 많은 소통을 할수록) 결정의 변화가 있을 때 시장 참여자와 일반 대중은 이를 약속 위반으로 인식하지 않게 되며 결국 신뢰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투명성과 소통이 안정성을 의미한다는 점은 정책 당국이나 일반 기업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미국 상장사와 비교하면 국내 상장 기업의 소통 문화는 여전히 폐쇄적이다. 일부 대기업 CEO가 신제품 출시 등 이벤트에 맞춰 언론과 접촉하기는 하지만 투자자나 이해관계자들을 위한 일상적인 공개 소통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내로라하는 국내 기업의 CEO나 오너 중에서는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개방적 문화를 가진 업종으로 불리는 테크 업계의 창업자들조차 직접 회사의 리스크나 비전을 자신의 입으로 설명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대규모 투자 계획이 별다른 설명 없이 미뤄지거나 취소·변경되는 모습을 보면 투자자들에게는 의심과 불확실성만 남을 뿐이다. 기업 스스로 호텔 캘리포니아의 문제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최근 국내 개인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 금액이 115조 원을 돌파해 2011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개방적인 글로벌 기업들을 접할수록 한국 상장사들의 폐쇄적인 소통 방식에 대한 불만과 불신도 커질 것이다. 한국의 경제 규모나 위상은 커졌지만 국내 주요 주가 지수는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내 상장사들이 주가 상승에 소극적이라는 투자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하고, 정부도 증시 밸류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회사의 가치에 대해 제대로 평가받고 싶은가. 무엇보다 투명한 정보를 바탕으로 솔직하게 소통하라. 투명성은 안정성을 낳고, 안정성은 시장이 좋아하는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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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록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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