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신, 그 한 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 워싱턴 문인회
신의 몸이 아직 살아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칼의 노래』는 김훈이 2001년 발표한 역사 소설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명장, 이순신(李舜臣, 1545.4.28 - 1598.12.16)의 이야기이다. 이순신은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탁월한 전략과 전술로 일본 수군과의 해전에서 연전연승해 나라를 구한 성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소설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관직을 박탈당하고 백의종군하는 대목에서부터 시작하여, 철수하는 적의 주력과 노량 앞바다에서 싸우다 총탄에 맞고 전사하는 장면까지 약 2년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훈은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나 47세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했다. 2001년 초 『칼의 노래』의 집필을 시작하여 5월에 출간했다. 출간 후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며 같은 해 10월 제32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문학평론가인 남진우는 그를 일러 “문장가라는 예스러운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우리 세대의 몇 안 되는 글쟁이 중의 하나”라고 평하고 있다.
김훈 문체의 매력은 기존의 역사를 작가가 재해석하여 새롭게 만드는 것에 있다. 『칼의 노래』를 통해 드러나는 성웅 이순신은 고뇌하는 인간 이순신으로 재탄생한다. 수사적 군더더기를 빼고, 명석하고 명료한 문장을 구사한다. 묘사와 서술은 사실에 기반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무인의 문장이다. 작가는 짧은 문장으로 이야기를 마구 휘몰고 나가며, 서사를 장황하지 않게 압축적으로 전개한다. 미사여구가 동원되지 않는 간결하고 힘 있는 문장들이 책을 읽는 내내 숨을 죽이게 만든다.
적과의 실질적인 전투가 벌어지지 않는 동안에도 그는 쉴 새 없이 고뇌와 싸운다. 칼끝이 자신을 향할까 반란을 두려워하는 임금의 불안함과 싸운다. 호시탐탐 그의 목을 노리는 조정의 무능력한 대신들과 싸우고, 돕겠다는 명분으로 대군을 이끌고 와 조선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어 접대만 받는 명나라 장수와 싸운다. 군령을 어기고 이기를 취하는 부하들, 자신들을 버리고 다른 전장으로 떠나지 말라고 울며 매달리는 가엾은 백성들에 대한 연민과 싸운다. 이순신의 검명인 ‘일취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 즉 한 번 들어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는 문장은 그의 심정을 잘 대변하고 있다. 죽을 곳을 찾아가는 영웅의 모습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문제를 보여주는 작품의 구도는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는 이순신의 명언처럼 역설적이다.
백성과 군사들을 헛되이 죽게 하지 않으려 끝까지 버텨낸 인간 이순신을 추앙하게 된다. 임금의 칼에 베여지는 허무함을 견딜 수 없어 했던 그의 마음에 가슴이 아렸고, 포로를 향한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고기를 넘길 수 없었다. 극진히 대접을 받고 온전한 힘으로 나아가도 기진할, 끝이 없는 전장에서 그는 간소하게 먹고 마시고 입었다. 기름지고, 넘치게 먹고 마시는 나의 신상이 부끄러워졌다. 가슴에 돌덩이가 얹힌 듯 답답해지는 순간에는 책을 덮고 길고 긴 숨을 내쉬었다. 문장을 쉬이 소화해 내지 못하여 더듬어 내려갔으되 내가 읽은 것이 감히 장군의 마음길 한 자락이라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것이었는지 가늠할 수 없다. 소설 안에서 나는 온전히 그가 되었다가 그가 품었던 여진이 되었다가, 그의 아들 이면이 되었다가 다시 그의 칼이 되어 징징 울었다. 문장들이 전장에서 살아 꿈틀대고 있었다. 책 뒤쪽에 실린 인물지와 연보의 기록만이 이 모든 이야기가 소설적 요소가 더해진 역사적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다.
나는 대장선 갑판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빌었다. 무엇을 향해 빌었는지 나는 빌고 있었다. 바다는 문득 고요했다. “이제 죽기를 원하나이다. 하오나 이 원수를 갚게 하소서.”
삶이 잡다한 것들로 혼잡스럽다면, 그리하여 헛것들로 가득 채워진 삶을 살고 있다면 주저 없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그가 살아온 행적을 슬쩍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삶에 주는 정화의 힘이 있었다. 진실되게 빛나는 그의 자취는 내게 더 단단히 살아갈 이유를 찾도록 하는 듯했다. 한순간도 헛되이 삶을 살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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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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