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3세 영국 국왕의 새빨간 초상화가 해외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대관식 이후의 첫 공식 초상화가 5월14일 공개되었는데 배경이 온통 벌겋고 검은색 재 같은 것이 날리는 가운데 웨일스 근위대 제목을 입은 국왕이 서있다. 오른쪽 어깨 위에는 한 마리 나비도 있다. 화가 조너선 여우는 “21세기 군주의 깊은 인간미를 나타냈고 나비는 변신과 재탄생이다.”라고 한다.
새롭고 현대적이다, 불편하다, 공포영화 포스터 같다는 등 의견이 분분한데 정작 영국 왕실은 아무런 논평을 하지 않는다. 왕실을 둘러싼 각종 스캔들과 군주제 존폐 논란에 더 이상 불을 붙이고 싶지 않아서일까.
2012년에는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 공식 첫 번째 초상화가 눈코입이 불분명하고 머리카락까지 부옇게 안개에 쌓인 것이 산사람 같지 않고 뱀파이어 같다는 혹평을 들었다. 심지어 1998년 화가 저스틴 모티머가 그린 엘리자베스 2세 초상화는 목이 잘린 것 같은 충격을 주었다. 노란 바탕에 여왕 얼굴만 똑 떨어져있고 초록색 드레스의 오른쪽 모서리는 검정 단두대처럼 날카롭게 잘렸고 왼쪽 어깨는 형체가 없는 등 지극히 초현실적이었다.
최초의 국왕 초상화는 16세기 튜더족 출신 헨리 8세(화가 한스 홀바인)다. 국왕은 흑사병 등으로 나라가 도산 지경이 되자 여론 진압에 초상화를 이용했다. 발을 넓게 벌리고 선 채 왼손에 단검을 움켜쥐고 정면을 응시하는 권위적 자세는 판화로 복제되고 동전에 새겨져 백성들의 충성심을 자극했다.
메트 뮤지엄에 가면 유럽관에 교황, 왕, 수많은 귀족들의 초상화가 즐비하게 전시되어있다. 명망 있는 화가는 왕과 귀족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줄 것을 무수히 요청받았다. 그 중에 찰스 1세의 궁중화가 안토니 반다이크가 그린 초상화는 우아하고 기품이 있어 인기가 높았다.
메트에서 그의 세계적 걸작 ‘제임스 스튜어드 리치몬드와 레녹스의 공작’(1633), ‘존 스튜어트 경과 버나스 스튜어트경’(1638)을 볼 수 있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섬세한 표정 묘사에 탁월한 채색 기술과 빛의 운용, 옷의 자수와 실의 짜임까지 완벽하다. 차갑고 딱딱한 왕실 초상화에서 인간적인 초상화로 새바람을 일으킨 반다이크다.
그러면 한국 왕들의 초상화는 어떤가? 왕의 초상화는 어진(御眞)이라 했다. 왕실 조상을 추모하는 동시에 국왕의 정통성과 왕실의 위상을 강화하고자 제작되었다. 6.25 피난 중인 1954년 부산 관재청에 보관 중이던 국보 3,400여점이 화재로 재가 되었다. 40점 이상의 어진도 사라졌는데 이 중 단원 김홍도가 참여한 정조 어진 원본도 사라졌다. 현재 남은 것은 전주 경기전의 태조 어진. 서울 창덕궁의 영조 어진. 철종 어진, 익종 어진. 영조의 연잉군 시절 모습 정도이다.
조선시대 초상화를 보면 한결 같이 근엄하다. 왕과 왕실, 공신들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손은 유교 국가답게 대부분 가지런히 모으거나 감추었다. 초상화의 완성도는 실제 모습과 얼마나 닮은 지로 결정되었기에 혹, 점, 검버섯, 마마나 여드름 자국, 사시까지도 그대로 드러냈다.
태조 어진을 보면 오른쪽 눈썹 뒤에 아주 작은 혹이 그려져 있다. 한국전통 초상화 제작의 원칙은 “앉은 이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올바르게 묘사되지 않았다면 그건 그 사람의 초상화가 아니다.”로서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내면까지도 담아내야 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대통령의 초상화는 본인과 얼마나 비슷할까. 이승만 초대 대통령부터 시작하여 역대 대통령 초상화들은 모두 반신상 유화로 그려졌고 현재 용산 청사 국무회의장 입구 벽면에 걸려있다. 현직 대통령 임기가 1년 정도 남으면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화가를 추천, 대통령이 최종결정한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는 김인승 화가, 최규하는 박득순, 전두환 김대중은 정형모 화가, 노태우는 김형근, 김영삼 박근혜는 이원희 화가, 노무현은 이종구 화가, 이명박은 정형모 화가, 문재인은 김형주 화가가 그렸다.
다음번 한국 대통령 초상화가 이번 찰스 국왕의 새빨간 초상화처럼 초현대적, 추상적으로 그려진다면 세간의 반응이 어떨까?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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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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