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남은 임기 3년을 어떻게 끌고갈 것인가.”
4·10 총선에서 집권당이 ‘백팔번뇌’로 조롱 받는 108석을 얻는 데 그치자 주변에서 이런 질문들이 쏟아진다. 전체 300석 중 192석이나 차지한 야권이 ‘입법 권력’을 장악해 ‘행정 권력’을 마구 흔들어댈 수 있는 상황이다. 거대 야당은 각종 특검을 밀어붙이고 ‘대통령 탄핵’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눈을 밖으로 돌리면 신냉전, 블록화, 인공지능(AI)발 산업혁명이 거세지는 가운데 글로벌 경제·기술 패권 전쟁까지 가열되고 있다. 반도체 등 전략산업 주도권 경쟁은 분초를 다투는 국가 대항전으로 펼쳐지고 있다. 경제·안보 등의 다층복합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대통령의 국정 리더십마저 흔들리면 글로벌 정글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나라가 재도약과 추락의 기로에 섰다.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윤 정부의 국정 동력 회복 방안을 백가쟁명 식으로 거론하는 이유다. 협치론 외에도 연정론, 개헌론, 대통령 탈당론 등 여러 묘책들이 제기됐다. 과거의 3당 합당론, DJP식 공동정부론 등을 벤치마킹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유의해야할 대목은 최근 여야 정치권과 언론계 일부에서 권력구조 개편론과 함께 제기되는 개헌론의 위험성이다. 현시점의 개헌 추진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 ‘심리적 분단 상태’라고 할 만큼 국론 분열이 극심한 상황에서 개헌 논의는 정치사회적 갈등만 증폭시키게 된다. 게다가 여야 균형이 무너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개딸’ 등 강경 세력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법치주의 등 헌법 가치가 무너질 수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낼 당시인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했다가 무산된 개헌안에는 토지공개념 명시, 경제 민주화 강화, 검사의 영장청구권 삭제 등이 들어 있다. ‘공공선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토지 사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표현으로 토지공개념을 강화하면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고 시장경제를 훼손하게 된다. 야권 일부에서는 남북 관계 개선을 명분으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3조를 삭제하는 방안까지 거론된다. 헌법 전문과 4조에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문구에서 ‘자유’를 슬그머니 지워버리면 자유민주주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게 된다. 야권이 개헌 논의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임기 단축’ 공세를 펴면 그 파장은 일파만파가 될 것이다.
현 단계에서는 현행 헌법을 손질하기보다 ‘제왕적 대통령’으로 변질된 부분을 개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총리의 행정각부 통할권’을 명시한 헌법 86조와 총리의 국무위원 임명제청권·해임건의권을 규정한 87조를 적용해 ‘책임 총리제’를 실천하는 것이다.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려면 경제 전문가를 책임 총리로 발탁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치·안보와 달리 경제 분야에서는 정파와 이념을 떠나 인재를 폭넓게 기용할 수 있다. 대통령과 국정 철학이 똑같지 않더라도 시장경제 등 헌법 가치만 공유하면 되기 때문이다. 출신 지역과 정파 등을 따지지 말고 실력과 도덕성을 두루 갖춘 인사를 총리로 지명하면 야당도 반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변화와 쇄신 의지를 강하게 보여주려면 기왕이면 역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젊은 총리를 기용하는 게 효과적이다. 35세인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총리는 젊고 유능한 이미지로 집권당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노동당 소속의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도 44세에 총리로 선출돼 ‘제3의 길’을 제시하며 새 바람을 일으켰다. 몸을 던져 뛸 수 있는 경제 총리가 나온다면 노사 양측 및 국민들과 적극 소통하는 국정을 펼 수 있다. 그러면 국가통합인증마크(KC) 없는 해외 일부 품목의 직접 구매 금지 정책 철회 등 오락가락 정책 논란의 재연도 막을 수 있다. 나아가 공직 사회를 좀먹고 있는 무기력증도 일거에 퇴치할 수 있을 것이다.
헌법이나 국회 의석 탓을 할 게 아니라 정공법을 구사해야 할 때다. 윤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운영 방식부터 확실하게 바꾸고 ‘역동적인 경제 책임 총리’를 내세워야 한다. 국정 전반을 대대적으로 리셋해 성과를 보여줌으로써 등 돌린 민심을 되돌려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은 조기 레임덕 위기에서 벗어나고 위태로운 이 나라도 반석 위에 올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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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덕 서울경제 논설실장·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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