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을 버린 아버지, 왜?
▶ 워싱턴 문인회
<소금>을 내가 자원봉사 활동하는 패어팩스 카운티의 도서관에 발견했다. 막연한 호기심에 빌려 왔다. 뭐 대단한 소설이 아닐거라는 선입감으로 저녁을 먹고 읽기 시작했다. 이 소설의 내용이 흥미진진하거나 감동이 넘쳐나서 밤을 새워가면서 읽은 것은 아니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어느 공감대에서 벗어나지 못해 책을 놓지 못했다. 가장 나의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같은 시대에 살면서 경험했던 모든 것과 우리의 곁에서 늘 잠재했던 거추장스러운 가식이 그대로 노출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소금>은 가족의 이야기를 다룰 때 흔히 취하는 소설 문법에서 비켜나가 있다. 화해가 아니라 가족을 버리고 끝내 ‘가출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이 아버지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왜 그는 평생 헌신한 가정에 돌아가지 못할까? 그 이유는 작가가 <소금>을 통해서 강조하는 자본의 폭력적인 구조가 그와 그의 가족 사이에서 근원적인 화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특정한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온 수많은 ‘아버지 1’, ‘아버지 2’, 혹은 ‘아버지 10’ 아니, 모든 아버지의 이야기로 귀착될 수 있다. 혼돈과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하는 세상에 적응을 제대로 못하고 힘겹고 어렵게 헤쳐 나온 우리 아버지들이 어떻게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풍요의 파도에서 아버지 세대의 굽은 등은 그냥 잊히는 것인지를 되짚어 본다.
<소금>은 15단락으로 나누어 단락마다 이름을 붙여서 단편소설과 같은 문체와 줄거리가 사뭇 색다르다. 대체적인 글의 흐름에 막힘이 없고, 이해하기 쉬워서 그냥 술술 읽혔는지도 모른다. 섬세한 문체와 정갈스러운 우리 고유의 말도 한몫했다.
첫 단락 ‘프롤로그’에서 염전에서 염부 1의 주검이 발견되는 것으로 서막을 연다. 탐정소설일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다음 문단은 가출한 아버지를 찾으러 온 ‘시우’가 주인공 ‘선명우’가 다니던 학교에서 그녀를 만나면서 과거의 행적을 하나씩 벗겨나간다. ‘나’의 아버지와 선명우의 아버지에 관한 반복 교차하는 지난 삶의 비교로 서로 같은 세대에서 겪었던 암흑과 같은 고난의 역사를 오간다. ‘소금은 시고 달고 쓰고 짜다’는 다양한 맛을 강조한다.
가족 이야기를 소금에 비유하면서 삶의 얽힌 타래를 풀려고 한다. 단락 7에서 ‘짠맛-가출, 단락 8에서 ‘신맛-첫사랑’, 단락 10에서 ‘단맛-신세계’, 단락 11에서 ‘쓴맛-인생’과 단락 13에서 ‘매운 맛-빨대론’으로 소금과 비교해서 담담하게 엮어나간다. 선명우를 구해준 두 살 연상의 ‘세희 누나’와의 첫사랑도 매정한 자본주의의 횡포에 희생이 된다. <소금>에서 유일하게 힘을 받던 순정도 번잡한 사회의 파도에 밀려 무참하게 사라지는 아픔도 한 줌의 재로 강에 뿌려진다. 가출의 계기가 됐던 ‘김승민’에게 대리 효도로 대리 만족하는 어리석음도 엿본다.
단락 13의 빨대론에서는 마음의 정곡에 찔리는 대목도 있다. 내가 부모에게 그랬던 것 같아 가슴이 아주 아팠다. 특히 ‘핏줄’이라는 이름으로 된 빨대는 늘 면죄부를 얻었다. 사람들은 핏줄, 핏줄이라고 말하면서 ‘핏줄’에서 감동받도록 교육되었다.
작가는 주인공 선명우를 빌려 소비의 단맛에 허우적거리는 자식과 아내를 은행 통장으로 비교하면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조금이라도 파헤쳐보려고 한다. 빨대, 깔때기, 은행 통장, 소금에서 공통분모를 찾아보려 하지만 그 엄청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냥 좌절한다.
작가 박범신은 굵직굵직한 한국의 문학상을 다수 수상한 작가다. 2011년에 고향의 충남 논산에 홀로 가서 등단한 지 40년 만에 40번째의 소설로 이 <소금>을 썼다고 했다.
이 글은 가족과 사랑의 이야기다. 가족은 사랑이라는 밑거름에서 자라기 때문에 서로 떼어놓을 수 없다. 사랑은 순정주의를 지향한다. 하지만, 작가는 우리의 바람이나 상상을 매몰차게 버리고 상처의 치유를 뒤로 미룬다. 마지막 단락의 ‘귀가’에서 ‘나’가 소설의 주인공 선명우의 딸 시우와 귀가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
이재훈>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