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말의 전쟁이라 하지만 이번 고국의 국회의원 선거는 정치인들의 막말이 난무했다. 아니면 말고의 무책임하고 근거 없는 말, 야비한 말, 모질고 거친 말, 말꼬리 잡는 말, 깐족대는 말, 무례한 말, 혐오의 말, 조롱의 말 등등 막말 대잔치같은 선거였다. 아무리 선거의 승리가 절박할지라도, 정치인의 막말은 스스로 자신의 품격을 떨어트리는 일이요, 품격 있는 사회를 가로막는 것이다.
말처럼 고마운 존재가 어디 있을까? 말을 통하여 나를 알리고, 다른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진심을 담은 말은 마음에 울림을 주어 천냥 빚도 갚게 하고 원수의 마음도 봄눈 녹듯 사라지게 한다. 따듯한 말은 희망의 꽃이 되어 낙심과 절망에 빠진 자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말은 인간을 규정하는 본질이다. 성경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말 곧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한다. 말씀(말)이 인간 존재와 우주의 근원임을 뜻한다. 절대자 곧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것이 말이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세상을 소통하게 하고, 앎과 모름의 세계를 이어 주는 것이 말이요 글이다. 말은 하늘과 땅과 사람을 하나로 이어주는 거룩한 소리다.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니 말은 마음의 무늬(紋)이며, 마음의 오묘하고 다채한 감정의 표현이니 말은 마음의 빛깔(色)이며, 인품의 됨됨이를 드러내니 말은 마음의 향(香)이다.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면 말은 ‘존재의 집’이다. 말은 곧 그 사람이다. 말은 또한 낱사람을 포함하여 민족이나 언어 공동체가 세상을 보는 눈이며, 얼이 숨 쉬는 자리이다. ‘나와 너’를 이어주는 말은 민족이나 국가 존재의 기반이다. 그러므로 말은 진심이 담겨야하고, 바르고, 따듯하고, 곱고, 무게가 있어야 한다. 말은 가벼이 혹은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품격이 요청된다.
정치인들의 기본은 품격 있는 말과 글이다. 중학교 시절, 영어 교과서에 실린 링컨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문(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을 배우며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또한 고등학교 영어시간에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 연설문(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을 접하고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 난다. 정치인의 품격 있는 말을 담은 명문이다.
한국 정치인의 말과 글도 이 시대의 학교 교과서에 자주 실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미국 대통령 가운데도 트럼프처럼 말을 거칠고 천박하게 하는 정치인도 있다.
품격 있는 말의 멋진 예가 있다. 2016년 오바마 대통령 선거 운동 중 ‘성난 흑인 여자’라는 무시와 차별의 말을 들은 미셸 오바마는 이에 맞서 “그들은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 When they go low, we go high”, 품격 있는 언어 정치를 보여주었다.
사람의 품격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자리가 언어 곧 말이다. 말과 글이 그 사람을 말해준다. 대화 중에 인품의 크기와 깊이가 나타난다. 성정이 거칠거나 얕으면 언어도 거칠고 천박해진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말로 나오는 법이다.(마태12;34) 품격 있는 말을 하려면 정치인이건 아니건 자신의 말과 마음을 돌아보아야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이 부지중 말로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경구가 있다. ‘생각을 조심해야 한다, 말이 되니까. 말을 조심해야 한다, 행동이 되니까’
말에 완벽하기란 참 어렵다. 품격 있는 말을 향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말에 인품과 진심이, 바름과 따듯함과 고움이, 그리고 무게가 있어야 한다. 노자는 참으로 큰 말은 어눌하고(대변약눌 大辯若訥), 미더운 말은 번지르르 하지 않다(신언불미 信言不美)고 했다.
비록 말이 어눌해도 크게 소리치지 않아도 품격이 담긴 큰 말, 미더운 말, 따듯한 말, 곱고 친절한 말, 희망의 말을 듣고 싶다. 정치인은 물론 우리 모두 시인처럼 말을 아끼고 다듬고 지켜야 한다. 말을 지켜야 정치가 살고, 말이 살아야 사회가 산다. 품격 있는 말이야 말로 품격 사회의 바로미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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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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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마치 평생 욕 단 한번도 하지 말라고 하는 소리로 들림. 역시 신부답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