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작곡가 얼 김(Earl Kim, 1920-1998)의 존재는 거의 충격에 가까웠다. 지난 4일 LA한국문화원에서 다큐멘터리 ‘얼(Earl.)’을 보고난 감상은 놀라움과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클래식 음악애호가로서 오랫동안 수많은 콘서트를 다녔고, 특히나 현대음악을 좋아해서 웬만한 작곡가의 이름은 꽤 익숙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이제껏 얼 김의 이름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무척 당혹스럽고 부끄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얼 김(한국이름 김을)은 아놀드 쇤베르크, 에른스트 블로흐, 로저 세션스의 제자였고, 오랫동안 프린스턴과 하버드 대학에서 제자들을 양성했다. 바이올린 거장인 이츠학 펄만과 지휘자 세이지 오자와, 주빈 메타, 소프라노 던 업쇼 등과 작업했고 수많은 레지던시와 그랜트, 수상 경력을 가졌으며, LA필하모닉과 할리웃 보울의 아카이브에도 그의 작품해설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도 그의 작품이 연주됐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 중에서 최고 수준에 오른 클래식 음악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 현대음악계에서 거의(어쩌면 완전히) 잊힌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관한 많지 않은 정보를 취합해 미루어보면 얼 김은 음악에만 몰두해 자신의 업적을 알리는 데는 무관심한 내밀한 성격이었고, 당시로선 서양음악계에서 이질적인 한국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지독한 인종차별을 겪은 초기이민자의 자녀로서 좀체 나서지 않는 태도가 몸에 배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타이 김(Ty Kim) 감독이 다큐멘터리 제작에 나서게 한 이유일 것이다.
역시 한인 2세인 타이 김은 에미상을 6회나 수상한 베테런 감독 겸 프로듀서로, CBS 시사프로그램 60분(60Minutes)을 비롯해 다양한 프로그램 제작으로 명성을 쌓았다. 그는 2018년 유명 첼리스트 린 해럴의 음악과 인생여정을 다룬 다큐(‘Lynn Harrell: A Cellist’s Life’)를 제작했는데, 이를 본 사람들이 꼭 세상에 알려야할 음악인이 있다고 강력권유해서 얼 김을 알게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고인이 되어 스토리를 만들기가 쉽지 않은데다 제작기간이 팬데믹과 겹쳐 3년만에 어렵사리 ‘얼’을 완성했다는 김 감독은 연구와 조사를 하면 할수록 그에 대한 놀라움과 존경, 흥분과 애정이 더해져 깊이 빠져들었다고 전했다.
얼 김은 1920년 캘리포니아 디누바에서 독립운동가 김성권ㆍ강혜원의 3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한학자이자 문필가였던 아버지 김성권은 흥사단의 이사장을 지냈고, 그 옛날에 이화학당을 다닌 어머니 강혜원은 대한여자애국단을 결성, 상해 임시정부에 총 4만6,298달러를 보냈을 정도로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펼쳤다. 훗날 두 사람은 각각 건국훈장 애족장과 애국장을 수여받았고, 로즈데일 묘지에 묻혀있던 유해는 2016년 고국으로 봉환돼 대전 현충원에 이장됐다.
하지만 1920~30년대 중가주에서 과일농장 노동자인 아버지와 재봉사 어머니가 꾸려가는 살림이 얼마나 어려웠을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얼 김이 피아노 신동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이를 알아본 사람들이 무료 레슨을 제공하여 음악가의 길로 인도한 것은 기적에 가깝다. 그는 UCLA에서 쇤베르크에게, UC버클리에서 블로흐에게 수학했으며 1952년부터 15년간 프린스턴 대학에서, 이후 23년 동안은 하버드 대학의 종신 석좌교수로 재직하다가 1990년 은퇴했다.
현재 미국 음악계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작곡가들이 그의 제자들로, 다큐에서 인터뷰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가 얼마나 뛰어난 작곡가였고 존경받는 교수였는지를 눈물로 증언한다. 심지어 그를 바르톡, 쇤베르크, 쇼스타코비치, 스트라빈스키와 같은 20세기 최고 작곡가의 반열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그의 음악은 특별하고 독창적이며 아름답다. 관현악을 많이 쓰지 않고 실내악을 기본으로 한 성악곡을 많이 썼는데 어린 시절 오페라를 좋아하는 어머니가 늘 라디오를 들으며 노래했던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사람의 목소리와 시적 텍스트를 좋아했던 그는 보들레르, 랭보, 릴케의 시를 사용한 예술가곡을 많이 썼으며, 특별히 ‘고도를 기다리며’의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대사를 쓰기 위해 파리에 칩거하던 그를 찾아가 설득한 일화가 유명하다. 베케트의 희곡을 사용한 1막짜리 오페라 ‘발소리’(footfalls)가 성공리에 초연됐을 때, 베케트는 얼 김에게 “당신의 음악이 나의 작품을 완성시켰다”는 감사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얼 김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절친했던 이츠학 펄만을 위해서 쓴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세이지 오자와 지휘로 보스턴 심포니와 협연한 것이 음반으로(유튜브에도) 나와있다. 펄만이 그에게 위촉한 또 다른 음악이 12개의 카프리스로,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이 바이올린 솔로는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좋아하는 레퍼토리의 하나로 꼽는다고 한다.
철저하게 서양음악만을 공부한 미국인 작곡가 얼 김에게서 한국적 유산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엄격하게 절제된, 간결하지만 음표 하나도 낭비되지 않은, 고요한 가운데 마음을 가득 채우는 음악은 마치 여백 많은 한국화를 보는 듯 시적이며 초월적인 느낌을 준다.
‘얼 김 재발견’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다큐 ‘얼’은 올해 미국과 한국의 여러 도시에서 상영될 예정이고 내년 3월에는 하버드 대학에서도 상영된다고 한다. 클래식 한류의 원조인 그를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 미주한인들도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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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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