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을 때, 겨울이 되면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간다든지 음악감상실를 찾는다든지 하는 버릇이 있었다. 밖이 추울 수록 실내는 더욱 포근해지고 영화를 보기에도 겨울이 안성맞춤이었다. 가끔은 영화 자체보다는 극장 휴게실에 앉아 이런저런 벽에 붙은 (영화) 포스터들을 보면서 공상에 빠지곤했는데 그 역시 어떤 일상에서의 일탈이라고나할까, 자기만의 감상…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는 그런 허영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고 나서 질퍽한 눈길을 걷는다든지 쌀쌀한 겨울바람을 맞으면서 인생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 또한 아날로그의 시대에만 경험할 수 있었던 색다른 낭만이기도 했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은 죽기전 자신의 장례식에서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연주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가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엘비라 마디간’을 듣고 있으면 이같은 시인의 장례식이라고나할까, 죽음같은 겨울의… 먹먹한 감동이 차오르곤 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모차르트 음악이 전해주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 어딘가 슬프고도 서정적인 낭만을 전하는데 있어서조차 모차르트의 음악은 자연스럽고도 극적이다.
영화 ‘엘비라 마디간’은 스웨덴의 보 비더버그 감독에 의해 제작된 1967년 작품으로, 발레리나 출신의 여주인공 피아 디거마크의 스타 탄생을 알린 작품이기도 했다. 남녀간의 순수한 사랑을 모차르트 음악을 배경으로하여 탄생시킨 명작으로도 유명하지만 영화보다도 모차르트의 음악이 더 유명하게 된 것도 아이러니였다. 마치 듣는 모든 이에게 긴 탄식같은 낭만의 감정으로 가득 차오르게 하는데 나의 경우는 날 것 그대로의… 겨울 서정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즉 눈내리는 밤, 하염 없이 걷고 싶게 만드는… 시리면서도 포근한, 내면의 감상을 전해주는 음악이라고나할까.
모차르트는 겨우 35세밖에 살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생애를 결코 짧다고 말하지 않는다. 단순히 그가 남긴 음악의 분량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추구한 예술세계의 색다름 때문이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새로운 예술세계를 창조해 나갔던 모차르트는 기악곡, 교향곡, 종교음악, 오페라를 막논하고 전분야에 걸쳐 인류 역사에 수많은 유산을 남겼다. 그중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분야는 바로 오페라였다. 사람들은 흔히 모차르트와 베토벤 등을 비교하곤 하는데, 모차르트에 있어서 베토벤과 다른 점은 바로 극적인 재능이었다. 즉 추상적인 (순)음악을 주로썼던 베토벤과는 다르게 음악을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재주가 있었던 사람이 바로 모차르트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오페라없는 모차르트란 김빠진 맥주나 다름없었다. 오페라 다음으로 모차르트가 남긴 위대한 업적이 바로 피아노 협주곡 분야였다. 그것은 모차르트 자신이 바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모차르트는 피아니스트로서 천품과 극적인 천품을 결합하여 27곡이나 되는 방대한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가 좋아하는 곡이 바로 21번 ‘엘비라 마디간’, 그리고 20, 22, 23번 등이 유명하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하면 몰라도 2악장 ‘엘비라 마디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클래식이라기보다는 어딘가 팝송 같기도 하고 추억의 발라드처럼 들려오는 이 음악은 아스라한 절망감이 느껴져 오곤 하는데 그것은 감탄스러운 선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느낌을 딱히 글같은 것으로 표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음악은 이거다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 더욱 신비스러운 것인지도 모르지만 모차르트 음악만큼 듣는이 각자에게 주관적 상상력을 더해 주고 이 세상의 문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답고도 먼세계로 이끌어가는 신비로운 낭만을 전해 주는 음악도 없을 것이다.
어둡고 가라앉은 분위기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치유를 주는 수수께끼같은 음악… 굳이 알려고 하면 멀리 도망가고 마음을 비운 채 귀를 열면 또다시 다가와 속삭이는 음악... 1785년에 작곡된21번 ‘엘비라 마디간’은 23번과 함께 형식미와 감상이 절묘하게 대비된 작품으로서,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드는 ‘숭고하리만치 장엄한 곡’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마치 고서점에서 들려오는 LP 음악의 향수같다고나할까… 눈이라도 내리면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추억의 영화음악… 낭만의 격정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엘비라 마디간’을 모두 함께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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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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