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와 70년대 한국은 어떠했나. ‘결핍’ 속에 성장했던 그 시절을 지금 노년에 접어든 이들은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았고 학교는 추웠으며 단발과 까까머리들이 가득했던 콩나물교실, 단체로 기생충 약을 먹어야했고 송충이잡기운동이라는 야만의 의식을 통과해온 기억들은 아마 치매에 걸려도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다.
한강의 기적도 있었지만, 군사독재와 유신정권은 인권과 자유를 유린했다. 미니스커트와 장발머리가 금지된 억압과 통제의 사회에서 가장 고통 받는 이들은 예술가들, 창조 욕구는 폭발하는데 표현과 활동이 제약되니 저항의 몸짓은 더욱 더 절박했다.
지난 11일 해머 뮤지엄에서 시작된 ‘오직 젊음: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는 놀라운 전시다. 이 시기 한국에서 대담한 전위적 실험미술이 만개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고, 그 내용과 수준이 지금 봐도 세계적이라 놀랍다. 이 전시는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과 미국의 구겐하임미술관이 6년에 걸쳐 공동기획한 것으로 지난해 서울과 뉴욕에서 선보인 후 LA로 옮겨온 것이다.
미국에서 한국 현대미술 관련 전시가 열린 것은 2009년 라크마의 ‘당신의 밝은 미래’를 시작으로 2022년 ‘사이의 공간: 한국 근대미술’에 이어 지난해 10월 필라델피아미술관이 개최한 ‘시간의 형태: 1989년 이후 한국미술’, 그리고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11월에 개막한 ‘계보: 메트의 한국미술’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주류미술계가 가장 흥미롭게 지켜보는 전시가 ‘오직 젊음’ 실험미술전이다. 9일 미디어 오프닝에서 앤 필빈 관장은 해머 뮤지엄에 이렇게 많은 프레스가 참석한 일은 ‘메이드 인 LA’(해머의 대표전시) 이후 처음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획일과 복종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권위와 형식에 도전했던 청년작가들의 날선 활동은 오래 잊혔다가 2000년대 이후에야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강국진, 정강자, 김구림, 김영진, 성능경, 이강소, 이건용, 이승택 등은 당시 제한적으로 접한 서구의 아방가르드와 플럭서스, 앵포르멜 등에 자극받아 기존의 미술영역을 벗어난 오브제와 설치, 해프닝, 영화, 사진, 비디오 등 새로운 매체들을 도발적으로 사용했다. 그 결과 많은 작품이 ‘퇴폐미술’로 낙인찍혀 사라졌고 더러는 사진이나 기억으로만 남았으며 전시작품 일부는 나중에 다시 만들어진 것이다. 다행히 29명의 작가 중 절반 이상이 생존해있어 백발이 성성한 지금에야 예술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설치작품들이다. 그중에서도 정강자(1942-2017)의 ‘키스 미’(1967)가 압권이다. 여성의 입술을 크게 형상화한 조각품으로 가부장적 사회에서 억압당해온 여성의 몸과 욕망과 언어를 드러내고 있다.
정강자는 1968년 쎄시봉 음악감상실에서 한국 최초의 누드퍼포먼스 ‘투명풍선과 누드’를 선보여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선구적 행위예술가다. 그해 한 주간지는 ‘올해의 최고 시끄러운 여인상’(일명 ‘발광상’)을 선정했는데 2위가 한국에 처음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타난 가수 윤복희였고, 1위가 정강자였다.
정강자는 또 그해 국전 심사비리가 터지자 정찬승, 강국진과 함께 기성 미술계를 비판하는 파격 퍼포먼스를 벌였다. 한강다리 밑에 모래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목만 내놓고 있으면 관객들이 물세례를 퍼붓고 작가들이 쓴 고발문을 화형에 처하는 ‘한강변의 타살’ 퍼포먼스였다. 이 작품은 ‘투명풍선과 누드’와 함께 사진으로 볼 수 있다.
전시장 한가운데 떡하니 나무밑동이 흙 덩어리째 전시돼있는 이건용의 ‘신체항’(Corporal Term)도 시선을 잡아끄는 작품이다. 1971년 이건용은 공사장에서 뿌리째 뽑힌 나무를 발견하고 친구들과 함께 리어카에 실어다 ‘한국미술협회전’ 전시장에 옮겨놓았다. 바깥에 있어야할 자연물을 전시장 안에 갖다놓음으로써 예술의 개념을 확장시키려는 시도였다. ‘신체항’은 1973년 제8회 파리비엔날레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이건용은 이때부터 신체를 외부세계와 소통하는 매체로 삼는 행위예술을 시작한다. 사진으로 전시돼있는 ‘손의 논리’와 ‘장소의 논리’가 그 이후 탄생한 작품이고, 유명한 ‘달팽이걸음’ 퍼포먼스도 거기서 나왔다.
또 하나 마음을 울리는 작품들이 성능경의 ‘신문’과 ‘세계전도’다. 유신시대 성능경은 한 달 동안 매일 동아일보 4장을 벽에 붙이고 거기서 모든 기사를 면도칼로 오려내 파란색 박스에 버렸다. 신문 제호와 광고, 만화만 남은 앙상한 신문은 하루 전시 후 다음날 투명한 상자에 버렸다. 일상화된 언론검열과 탄압을 비판한 퍼포먼스였는데 실제로 그 한달 후에 동아일보 ‘백지광고사태’가 터졌다니 시대를 읽는 작가의 예민한 시각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전시장 출구 즈음에 설치된 ‘(거꾸로 된) 세계전도’ 역시 보고 있으면 마음이 짠해진다. 세상으로 나가 소통하고 싶은데 할 수 없었던 작가가 관공서와 학교 어디에나 붙어있던 대형세계전도를 가져다가 조각조각 잘라내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원하는 대로 재편한 세계지도다. 우물안 개구리 같았을 예술가의 답답한 마음이 전해져와 가슴이 뻐근해졌던 작품이다.
아방가르드, 전위예술, 개념미술… 이런 사조는 다 지나갔고, 더 난해한 미술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특별히 혁신적이거나 놀랄 것은 없는 전시다. 하지만 50~60년전 작고 가난한 한반도 한구석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충격이고 감격이다. 소멸된 듯했던 이들의 예술이 심어놓은 씨앗이 발아해 오늘날 한류가 꽃 피고 열매 맺었다.
UCLA 해머 뮤지엄은 멀어서 가기가 쉽지 않다. 또 찬찬히 설명을 읽어야만 이해 가능한 작품들이 많은 것도 장애요인이다. 하지만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다. 5월1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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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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