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문제와 먹고살 문제의 이중고를 겪고 있는 B자매는 아들의 자폐검사 결과가 곧 나온다고 합니다. 아들 때문에 딸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설사가 계속되고 체중도 많이 빠졌다고 합니다. 자매도 많이 지쳐있습니다.”
“C자매는 16세 아들 앞으로 나오는 정부보조금과 푸드 스탬프가 수입의 전부이며, 밀린 렌트비가 1만7,000달러가 넘는다고 합니다. 서류미비자여서 정부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지만, 병원 치료를 받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에 KH자매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방 하나를 빌려서 화장실과 부엌을 공동으로 쓰면서 13세 아들과 살고 있었습니다. 방엔 싱글침대 1개, 아들 책상 그리고 조그만 서랍장 하나뿐이었습니다. 정말로 딱해보였습니다.”
‘여성회복공동체’(Accompany Worldwide)의 월 소식지에 올라온 사연들이다. 매달 AW의 소식지에는 이보다 더 많은 불우한 여성들의 소식이 업데이트된다. 미성년 자녀를 데리고 홀로 살아가느라 고군분투하는 싱글 맘들의 눈물겨운 서바이벌 스토리들이다.
‘어컴패니 월드와이드’(AW)는 가정폭력과 신분문제로 생존이 어려운 싱글 맘들을 도와주는 비영리단체다. 8년 전부터 남가주의 한인여성들이 돈과 뜻을 모아 곤경에 처한 젊은 엄마들에게 재활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지금까지 35명이 도움을 받았고 이 가운데 70% 이상이 자립에 성공했다.
시작은 작고 평범한 한 여성의 선한 마음이었다. 이경미(63) AW대표는 사모 역할에 충실하던 가정주부였다.(남편은 LA카운티교도소의 선임목사였고 현 자문인 이병희 목사) 그녀는 2001년 41세 때 재정설계사란 직업을 알게 돼 라이센스를 취득하고 일을 시작했는데, 적성에 맞았는지 신명나게 일하면서 연수입이 수십만 달러에 달할 정도로 크게 성공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과연 이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인가, 하는 의문이 생겨났고 답을 찾기 위해 풀러신학교에 들어가 선교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졸업하던 무렵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일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너의 삶 자체가 사역이다. 주변사람 한명이라도 더 챙기고 도와주는 일에 충성하면 된다’는 깨달음이 왔다.
2016년 풀러를 졸업하면서 ‘여성이 여성을 돕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싱글 맘을 돕기로 한 것은 주변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동료 재정플래너들 중에도 혼자 애 키우며 일하는 여성이 적지 않았은데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어려운 사람들이 있었다.
비슷한 마음을 가진 신학교 동기와 교수가 조인하면서 성경공부모임으로 시작했고, 싱글 맘 사역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조금씩 더 모이자 코리아타운, 웨스트LA, 풀러튼, 사우스베이 등 4개 지부로 확대됐다. 회원 38명은 대부분 가정주부거나 자영업체를 운영하는 중산층 여성들이고 회비는 연 500달러, 조금 더 내는 사람도 있고 기부만 하는 비회원들도 있다.
2018년 독지가의 도움으로 한인타운에 셸터를 마련해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단체생활이 불가능해 문을 닫았고, 2021년부터는 주택보조 프로그램으로 전환했다. 일인당 1년에 주거비 9,000달러(6개월 동안 월 1,000달러, 나머지 6개월은 월 500달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돈을 주면 무기력해져서 지원에 의존하는 여성이 많을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 한국의 관련기관 자료를 보면 한부모여성들은 공통적으로 수급에 의존하지 않고 일을 하여 안정적인 커리어를 쌓으려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AW의 수혜자들도 마찬가지, 더 오래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간혹 있지만 대개는 1년 안에 직업교육도 받고 치유와 멘토링을 통해 살길을 찾는다고 한다.
이경미 대표에 의하면 도움을 요청하는 싱글 맘들은 모두 가정폭력 희생자들이고, 거의 다 한국서 속아서 결혼한 케이스들이다. 미국에 와보니 남편이 기혼자인 경우도 있었고, 도박에 빠져서 렌트비도 못 내고 있는 사람, 시어머니와 남편이 같이 때려서 도망 나온 경우, 북한에서 온 난민도 있었다. 대부분 남편이 영주권 신청을 안 해줘서 불체자신분이 됐고, 주변에 가족도 친지도 없어 아이와 함께 오갈 데 없어진 여성들이다.
한마디로 “친정이 없는 게 문제”인 이들에게 AW 회원들은 친정엄마요, 언니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한 달에 한번 지원금 건넬 때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나누면서 일대일 관계를 맺는다. 회복된 수혜자들이 한결같이 “경제적 도움도 큰 힘이 됐지만 진심으로 위로하고 상담해준 멘토들의 정신적 도움에 깊이 감사한다.”고 고백하는 이유다. 한 여성은 “아는 이가 하나도 없어서 비상연락처 난에 적을 사람이 없는게 가장 힘들었는데 여기서 만난 분들이 큰 힘이 돼주셨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도운 여성들이 각종 자격증을 취득해 미용사, 치과직원, 간호보조사, 마사지업소 개업 등 재활에 성공할 때마다 AW공동체는 다같이 기뻐하고 축하한다. 옷도 없이 아이만 안고 쫓겨났던 여성이 자립해 어려운 중에도 매달 200달러씩 AW에 기부하는 감동 스토리도 있다.
처음 AW의 싱글 맘 사역에 대해 들었을 때 적잖이 놀랐다. 우리 주변에 아직도 그렇게 힘든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조용히 좋은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한인사회가 많이 크고 성장했지만 그늘 아래 사회적 약자들의 숫자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나만 잘사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조금 더 살피고 손을 내밀어야겠다.
www.accompanyw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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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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