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기은퇴 후에도 일하면서 인생을 즐기는 한인들
60세 이전 조기은퇴를 한 뒤 일을 하면서 인생을 즐기는 한인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은퇴를 준비했고 은퇴 후 어떻게 인생을 즐기고 있을까. 조기은퇴를 준비하고 있는 한인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조기 은퇴자들을 만났다. 조기 은퇴자들 중에는 파트타임 또는 풀타임으로 일하는 한인들이 많다. 은퇴는 했지만 50대로 젊기 때문이다. 본보가 만난 한명은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경찰공무원으로 은퇴를 한 후 인근의 라우든 카운티에 가서 보안관으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또 다른 한명은 본인이 운영한 마루 회사를 직원에게 넘겨준 뒤 그 동안 마음껏 하지 못했던 여행도 하고 골프도 즐기면서 가끔 예전의 직장에 가서 일도 한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기 은퇴자는 2-3년 전 연방 공무원으로 50대 후반에 은퇴한 후 요즘은 골프장에서 캐셔(Cashier)로 일하고 있는데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연방 공무원으로 있으면서 매일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이 스트레스였는데 파트타임으로 일주일에 몇 번 골프장에 가서 캐셔로 일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면서 인생이 더욱 풍부해졌다고 했다.
● 로이 최 전 페어팩스 카운티 경찰국 형사(59세)
“은퇴 후 보안관으로 근무해요”
페어팩스 카운티 경찰국에서 형사로 근무한 로이 최 씨(59세)는 “55세가 되던 해인 2020년 1월까지 페어팩스 카운티 경찰국에서 16년간의 경찰관 생활을 은퇴하고 몇 개월 후에 라우든 카운티 보안관으로 근무를 하게 됐다”면서 “지금은 매달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연금을 받고 라우든 카운티 보안국에서는 월급을 받고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최 씨는 연금으로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매년 4만달러를 받으며 현재 라우든 카운티에서는 연봉으로 7만4,000달러를 받는다고 한다.
최 씨는 “페어팩스 카운티 경찰국은 연금을 카운티 정부에서 주지만 라우든 카운티 보안국은 연금을 주정부에서 준다”면서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계속 일하는 것보다 먼저 은퇴를 하고 라우든 카운티에서 일을 하면 은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경찰 공무원으로서 은퇴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 씨는 “라우든 카운티 보안국에서 법원 일을 시작했는데 요즘은 제가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원래 했던 경찰관 모집을 하고 있다”면서 “제가 이곳으로 온 후 건 리 전 페어팩스 카운티 경찰국 부국장, 조셉 오 전 워싱턴 DC 형사 등 한인 경찰들이 라우든 카운티 보안국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세가 되던 해인 1983년 용산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도미해 뉴욕에서 10학년부터 다시 시작했다. 다음해인 1984년에는 보스턴 소재 고등학교로 전학했고 영주권자였기 때문에 1988년에서 91년까지 한국 강원도에서 대한민국 군인으로 군 생활을 했다.
최 씨는 “저는 원래 꿈이 경찰이 되는 것이었는데 40세의 늦은 나이에 시작해 16년간의 복무기간 중 많은 한인 경찰을 카운티 경찰국으로 모집한 것과 한인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한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던 것에 보람을 느낀다”면서 “제 아들도 지금 페어팩스 카운티 경찰국에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최 씨는 “골프는 시간날 때마다 하는데 1주일 한두 번 정도 치고 있고 격일로 3-5마일 정도 달리면서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면서 “지금 일을 하고 있어도 연금을 받고 있는 은퇴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아내와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하고 있고 최근에는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를 방문했는데 앞으로는 미국 내 안 가본 곳도 가보고 기회가 되면 스페인도 한번 여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 씨는 외손주가 둘인데 요즘 5세와 2세인 외손주를 보는 즐거움이 크다고 한다.
● VA 매나세스 거주 김창선 씨(57세)
“은퇴 후 가끔 예전 직장서 일해요”
버지니아 매나세스에 거주하는 김창선 씨(57세)는 “2021년, 11월 55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은퇴를 하게 됐다”면서 “당시 제가 운영하는 마루 설치회사에 제너럴 매니저로 있던 친구가 비즈니스를 인수하고 싶다고 해서 그 제의를 받아들인 것이 은퇴를 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비즈니스를 넘겨주는 조건으로 자신이 소셜연금을 풀(Full)로 받을 수 있는 67세까지 매달 5,000달러를 받기로 했다. 1년에 6만달러, 12년 동안 72만달러를 받는다는 조건이었다.
김 씨는 “은퇴를 하면 매달 수입이 없기 때문에 비즈니스 매각을 매달 5,000달러씩 받는 것으로 했고 은퇴에 앞서 모든 빚을 청산하고 매달 집 모기지로 나가는 1,500달러(모기지 이자 1.65%)만 남겨뒀는데 은퇴 후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다”면서 “파트타임으로 월그린스(Walgreens)이나 월마트(Walmart) 등 제가 일하지 않았던 분야에서 일을 하려고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김 씨는 “아직 젊기 때문에 은퇴 후에도 돈이 필요하면 돈을 벌면 되기 때문에 특별한 불안감은 없다”면서 “은퇴를 했지만 파트타임 일을 하려는 이유는 시간도 보내고 용돈도 벌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지난여름에는 전에 일했던 곳에서 도와달라고 해서 매달 받는 5,000달러 이외의 엑스트라로 돈을 벌었다”면서 “은퇴를 하고 나서 3-4개월은 매달 나가던 직장을 안가니 공허하고 뭔가 마음이 허전했는데 매일 할 일을 만들고 계획에 맞춰 생활을 하다 보니 지금은 적응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창선 씨는 1주일에 두 번은 골프장으로 나가서 라운딩을 하고 월, 수, 목, 토는 버크에 있는 한 공원에서 지인들과 함께 테니스를 치고 있다.
김 씨는 “은퇴를 하니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 너무 좋다”면서 “은퇴를 한 후 처음에는 친구를 보러 미시시피주로 여행을 갔고 이어 루이지애나에서 크루즈 여행을 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아내와 함께 3개월 동안 한국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전국 투어도 했는데 ‘은퇴하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씨의 부인은 부동산 에이전트로 시간이 자유로워 김 씨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특히 좋다고 한다. 김씨가 은퇴를 하면서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많이 늘었다고 한다. 둘 사이의 자녀는 한명으로 현재 대학생이라고 한다.
김 씨는 1993년 도미해 1년간 닭 공장에서 일을 한 뒤 영주권을 취득하고 이후 플로어 설치 쪽에서 일을 하다가 2006년 비즈니스를 오픈해 15년간 운영한 뒤 팔고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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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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