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의 겨울은 그렇게 (감각적으로) 추운 겨울은 아니다. 그러나 12월이 되면 몸 속에 잠들고 있는 의식은 조건반사처럼 갑자기 을씨년스런 겨울을 느끼게 되곤 한다. 아마도 성인이 될 때까지 겨울을 (가득) 느끼면서 성장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마 ‘설국(雪國)’에 대해 이번 글이 쓰고 싶어졌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雪國’을 다시 읽었다. 약 30년 전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당시 마치 온 세상이 눈으로 하얗게 덮인 듯한 착각이 일었었다. 일부러 SF 재팬 타운을 활보하며 눈없는 거리를 마치 눈을 밟듯 환상 속에서 걷게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의 애틋함(?) 때문이었을까, 5, 6년전 그 때의 감상을 되돌려 보려고 이 작품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첫 문장부터 (번역이 달랐기 때문이었는지) 그 때의 감상은커녕 도대체 마음을 잡고 이 작품을 읽어갈 수가 없었다. 팬데믹이 안겨준, 긴 체념(?)의 선물로, 마음의 호흡을 되찾아 설국을 다시 읽고 눈없는 고장에서 눈을 하얗게 맞을 수 있었다.
소설 ‘설국(雪國)’ 은 무겁다면 무겁고 가볍다면 가벼운 소설이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을 생각하며) 현란한 문체, 대단한 이야기를 기대하고 읽었다간 눈 속에 빠져 죽기 십상이다. 작품은 그저 작가의 내면의 의식을 담담히 적어나가고 있을 뿐인데, 어쩌면 노벨상을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퇴색해 버린, 은둔자의 고독이라고나할까… 그런 쓸쓸함의 향기가 넘쳐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설국’은 장편이지만 사실은 중편에 속할만큼 분량이 짧고 읽기도 쉽다. 간결한 필체, 음률적인 문장은 하이쿠라고 하는 (일본)전통시를 떠오르게 하기도 하는데, 소설의 줄거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고마코라고 하는 게이샤를 등장시켜 여자로서의 운명, 노래를 팔고 몸을 파는 노리개감으로서의 여인과 온천에서 끼를 팔면서도 정혼한 남성을 위해 희생하는, 정신적인 여인의 모습을 랑데뷰시키고 있다.
(눈나라에 찾아온) 주인공 시마무라는 고마코의 단아한 모습에 큰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고마코를 요구하기보다는 양심의 가책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끝낼 다른 여자를 원한다. 그녀는 너무 깨끗했고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것(접대)과 그녀(고마코)는 별개의 것이었다. ‘당신은 좋은 여자야’ 주인공 시마무라는 늘 말하지만 고마코는 ‘좋은 여자’란 말뜻의 무게를 알기에 절망감에 빠진다. 고마코는 자신을 ‘좋은 여자’라고 말하는 시마무라에게 오히려 ‘나쁜 남자’라고 되쏘아준다. ‘좋다’ ‘나쁘다’란 의미가 같은 맥락에서, 같은 의미의 사랑, (그리고 동시에) 절망으로 표현되는 작품도 ‘설국’이 아니고선 찾아보기 힘들지 모르겠다. 타자의 관점에서 보면 그저 그렇고 그런, 스쳐가는 남녀의 썸타기에 불과했지만 가장 애틋하고 순결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야할 자신만의 로맨스가 결국은 할퀴고 무너져버릴 비극의 무대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을 때… 그 공허로움은 아마도 상처의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리라.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로 시작되는 이 작품의 첫 문장은 너무도 유명한 문장으로서, ‘성은 깊은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로 시작되는 유명한 ‘성(城)’ 의 첫 문장과도 어딘가 닮아 있다. 무언가 새로운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에 부풀게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어두운 이야기 속에서 눈의 메타포는 이야기의 전개와 더불어 계속해서 등장한다. 눈은 때때로 어둠 저편에서 무너질 듯 침묵하기도하고 때로는 대지를 울리는 눈울림을 통해 폭설을 예고하기도 한다. 때로는 차갑고 때로는 따스한 눈의 신비… 그 마술때문이었을까? 수작 ‘설국(雪國)’은 눈이라고하는 매개를 통해 자칫 상처받기 쉬운 이야기의 끝을 포근하게 감싸안는다.
소설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으로 (무위도식) 한량으로 사는 서양 고전무용 비평가 시마무라와 고마코라고하는 게이샤와의 로맨스가 중심이다. (1937년에 발표, 1968년 노벨문학상을 받음) 아름다운 여인 고마코는 이 부잣집 도련님(시마무라)을 사랑하지만 이미 유부남인데다 가까이 다가오길 두려워하는 시마무라의 우유부단한 성격때문에 고뇌한다. 시마무라도 그런 자신의 모습에 절망하고 자신의 성격때문에 희생당하는… 그 달콤하면서도 마실수 없는 독주, 고마코에 대해 무한한 동정을 느낀다. 작가 야스나리는 여기서 요코라고하는 또하나의 아름다운 처녀를 개입시켜 로맨스의 텐션을 끌어올리고 있는데 다소 미스테리한 요코 역는 게이샤를 삭제한 고마코의 또다른 모습으로서(모르지만), 끝에 요코가 불에 타 죽은 장면은 이야기가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는, 그런 안타까움을 전해주기도 한다.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나야만 갈 수 있는 설국(雪國)… 그것은 어쩌면 이루어질 수 없는 그들만의 다른 (소망의)모습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또 인간만이 간직한 비밀… 결국은 붙잡을 수 없는, 눈의 나라의 그리움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202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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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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