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이 가까운 내 누이동생은 젊었을 때 못 받은 박수를 늘그막에 받으며 산다. 경기도 고양시의 노인 핸드벨 팀과 우쿨렐레 오케스트라 단원인 그녀는 커뮤니티의 각종 문화예술 행사에 초청받아 무대에 서는 기회가 잦다. 핸드벨 팀과 연주한 후 유니폼을 갈아입고 우쿨렐레팀과 또 연주하느라 같은 행사에서 두 번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매일 연습하기 바빠 외로울 틈이 없단다.
LA에도 박수를 받으며 노년생활을 즐기는 신문사 옛 동료가 있다. 고희를 갓 넘긴 그녀는 뒤늦게 배운 플루트를 은퇴 후 더욱 연마해 연주 실력이 아마추어의 티를 벗어났다. 아들 뻘 젊은 지휘자가 이끄는 ‘라 루체 체임버 오케스트라’ 창립단원이다. 이달 초 두 번째 연례 연주회에서 ‘달빛’(드뷔시)을 불어제쳤다. 최근 시작한 개인 유튜브 연주 동영상에 팔로어가 늘어나고 있다.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꼭 박수를 받지 않더라도, 다양한 취미생활이나 봉사활동으로 여가를 선용하는 노인들이 많다. 대부분 건강하고 활력이 넘쳐 보인다. 하지만 70~80 나이에도 제대로 돈벌이를 한다는 노인은(사업가들을 제외하고) 보기 드물다. 경험과 식견과 전문지식을 갖춘 ‘신 노년’들이 하릴 없이 세월을 허송하다가 빈곤층으로 전락한 후 독거 끝에 고독사하기 일쑤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0.4% (2020년 기준)로 OECD 38개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아이러니하게도 65세 이상의 고용률 역시 34.9%로 OECD 나라 중 최고다. 통계상 일하는 노인들은 많지만 대부분 저임금 직종이다. 생계를 위해 늙어서도 허접한 일을 하도록 내몰리는 상황이다. 지난해 68세 노인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은 180만원으로 10년 젊은 58세의 311만원보다 42%나 적었다.
전체 노인가구의 78% 이상이 홀로 살거나 부부끼리만 산다. 배우자마저 없는 ‘독거노인’이 187만여 가구에 달해 65세 이상 전체 고령가구의 3분의 1을 웃돈다. 이들 독거노인의 70%가 빈곤상태이다. 가구소득 중 본인의 노동수입이 43%를 차지하는 반면 공적연금 소득은 30%이다. 반대로 영국, 캐나다 등 외국에선 노동소득이 10%대인 반면 공적연금 소득은 70%대에 달한다.
미국상황도 비슷하다. 최신 센서스 데이터에 따르면 나홀로 가구가 사상 처음으로 30%에 육박했다. 1940년 센서스에서 8%에 불과했지만 30년 뒤 18%로, 다시 반세기만에 30%로 치솟았다. 자녀가 한명도 없는 55세 이상 연령층이 1,520여만 명에 달한다. 이들이 독거노인이 되는 건 정해진 코스다. 그나마 무자녀 미국인들의 빈곤율은 12%로 한국 독거노인의 70%보다 훨씬 낮다.
1인가구가 늘어나면서 ‘고독사’ 노인도 늘어난다. 꼭 노인만은 아니지만 고독사(kodokushi)라는 말 자체가 20여년전 69세 일본 노인의 사체가 죽은 지 3년 만에 자기 집에서 발견된 데서 비롯됐다. 한국에선 2021년 한해 총 3,378명이 고독사 했다. 50대가 1,001명(29.6%), 60대가 901명(29%)으로 중장년층이 60% 가까이 차지했다. 고독사 2명 중 1명은 이들 세대의 남성이었다.
한국은 ‘인생 100세 시대’답게 2년 후(2025년) 전체인구의 20.6%를 65세 이상 노인이 점유하며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 인구 5명 중 1명이 할아버지 아니면 할머니이고, 이들 중 상당수는 건강과 경험과 사회공헌 욕구가 넘치는 ‘노동(老童)’들이다. 이들은 노인 기준연령을 현행 65세에서 적어도 70세까지 연장해 ‘젊은 노인들’이 계속 일하도록 기회를 달라며 호소한다.
세계최강의 미국을 통치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은 81세다. 내 또래다. 혹시 도널드 트럼프가 내년에 권토중래해도 임기 중에 80을 넘긴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는 건 그들 이야기이고 우리네 현실은 다르다. 나도 일 대신 장난삼아 아코디언이나 배워볼까 생각했는데 ‘라 루체’ 공연 참관 후 없던 일로 했다. 커뮤니티 오케스트라지만 노인 단원들의 수준이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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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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