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초콜릿 시즌이 돌아왔다. 미국의 초콜릿 판매의 10% 이상이 시월의 마지막 날인 할로윈을 앞둔 일주일 내에 이뤄진다 한다. 11월 1일은 할로윈 날을 위해 잔뜩 쌓아둔 초콜릿 재고를 세일하는 날이어서 연중 초콜릿이 가장 많이 팔리는 날이다. 12월에 들어서면 인사를 건네기 위해 주는 선물의 90% 이상이 초콜릿이라 한다. 그러니, 2023년 전 세계 초콜릿 산업이 171조 원에 달한다는 것이 그리 놀라울 일도 아니다. 내 부엌에도 초콜릿이 일년내내 놓여있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남편 때문이다. 특히 재택근무 이후로는 일하다 피곤해지는 오후엔 오가며 한두 개씩 먹는 것이다.
단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손도 대지 않는다. 대신 난 커피를 좋아한다. 단것이 당길 땐 초콜릿 대신 커피 캔디를 찾고,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꼭 커피아이스크림을, 디저트케?葯?커피 맛이 나는 티라미수를 좋아한다. 커피 향이 좋아 시도 때도 없이 커피를 마시곤 했었는데, 나이 들어가며 이젠 아침과 점심식사 후 정도로 줄였다. 맛은 다르지만, 커피와 초콜릿엔 공통점이 여럿 있다. 둘 다 기호식품이고, 전 세계 생산지가 적도 근처이고, 노동착취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먹는 것을 재배하는 것은 많은, 고된 노동을 필요로 한다. 올여름, 일 년 전 새로 지어 이사 들어온 집의 뒷마당 경계가 산딸기에 둘러싸여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매일 아침 산딸기를 땄다. 이른 아침, 한두 시간을 꼬박 따야 우리 식구 먹을 정도였다. 숲과 맞닿아 있는 땅에 저절로 자란 산물을 수확하는 데만도 그런 노동이 필요하다면, 애써 가꾸고 키워 그 산물을 전 세계에 수출할 정도로 생산해 낸다는 건 얼마나 많은 노동이 필요할 것인가. 게다가, 초콜릿이나 커피는 열매를 따서 모은 후, 딱딱한 껍데기를 깨고 그 안의 열매를 또 볕에 말리는 등 수많은 작업이 필요하다.
근대화 이전엔 신분제와 노예제도를 통해 족쇄를 찬 노예들이 이런 고된 노동을 감당했다. 21세기에 이른 지금은 누가 감당할까? “우리는 초콜릿 산업의 현대판 노예와 아동 노동 착취를 근절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10월 8일 일요일 아침이면 빠지지 않고 보는 CBS Sunday Morning에 소개된 Tony‘s Chocolonely 초콜릿 포장지에 적힌 문구이다. 전 세계 초콜릿 원재료의 80% 이상이 생산되는 아프리카 가나와 그 옆의 아이보리코스트에서 초콜릿 산업현장을 찾아가 촬영한 것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가 말한다. “우리는 죽어라 일하지만, 초콜릿 맛이 어떤지 몰라요. 우리가 받는 돈으론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을 사 먹기에도 모자라는 걸요.” 아이보리코스트의 초콜릿 농장에서 일하는 대부분이 하루에 $1도 벌지 못한다고 한다. (https://damecacao.com/chocolate-statistics/#19 참고)
산업혁명 이후 반복되어 온,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이야기이다. 산업혁명을 시작한 영국에서 어린 시절 노동착취를 경험했던 챨스 디킨스는 “어린 아이들의 연약한 몸이 구부정하고 부러진다. 성장이 멈추고 지적 능력은 손상되며 애정은 시들고 감각은 죽게 된다”고 썼다. 1970년 “우리 노동자도 인간이다!”라고 외치며 전태일은 서울 평화시장 입구에서 분신자살했다. 그의 나이 스물둘. 당시 열악한 의류공장의 90% 이상의 노동력이 십대의 소년, 소녀들이었다. 닭장 같은 그곳엔 환기가 잘 안돼 결핵이 만연했고, 잠이 부족한 그들에게 암페타민을 강제로 주사하기도 했다 한다. 하루에 16~18시간을 일해 그들이 받은 돈은 당시 커피 한 잔값 정도여서 항상 굶주림에 시달렸고, 그런 동생 같은 아이들을 보다 못해 전태일은 자신을 불태워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이런 이야기가 세계 곳곳에, 특히 커피와 초콜릿이 생산되는 적도 부근에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21년, 국제노동기구의 보고(https://www.ilo.org/global/about-the-ilo/newsroom/news/WCMS_766351/lang--en/index.htm)에 따르면 1억 5천만 명의 아이들이 여전히 이런 노동착취에 시달리고 있다. 커피와 초콜릿을 포기할 수 없어 노동착취 없이 생산된 제품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세상엔 이윤만 좇는 악인뿐 아니라 함께 잘살 길을 찾는 이들 또한 항상 있다. 빈곤 퇴치와 지속 가능한 재배 및 무역을 장려하기 위해 조직된 다양한 공정 무역 조직은 공정무역 보증(FAIRTRADE Certificate) 기준을 설정해 이에 부합한 제품에 보증표를 붙인다. https://www.thegoodtrade.com이나 https://www.slavefreechocolate.org와 같은 사이트에선 이런 제품을 소개한다. 더 나은 세상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얼마나 애써서 만들어 가는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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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정 금융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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