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국경과 닿아 있는 미드 웨스트의 미네소타 주는 많은 미주 한인들에게는 변경 같은 곳이다. 혼혈을 제외한 한인 인구는 1만5,000명 남짓(2020년 센서스). 풀러튼 시 한인 보다 적다. 야구에 관심이 있다면 한국 프로야구의 박병호 선수가 잠시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뛰다가 돌아간 것이 생각날지 모르나 한국과의 관계도 특별한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미네소타에는 특이한 점들이 있다. 우선 한국전 참전 용사가 유독 많다. 미네소타 출신 한국전 베테런은 9만5,000여명. 단일 주로는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의 14만5,000명에 비할 것은 아니나 인구 600만이 안되는 주로서는 놀라운 숫자다. 미네소타는 겨울 추위가 혹독한 대신, 여름 더위는 맹렬한 대륙성 기후. 6.25당시 한반도가 비슷했다. 많은 미네소타 젊은이들이 한국으로 보내 졌던 이유라고 한다.
유달리 한인 입양인이 많은 것도 특이하다. 전쟁 후 미국에 입양된 한국 아동이 12만명 정도라는데 미네소타에 2만명 가까이 몰려 있다. 여기의 뛰어난 아동복지 정책 등이 주요 요인일 것이라고 현지 관계자들은 전한다. 백인 주민 중에 남 유럽 등에 비해 가족관계에서 혈연에 덜 집착하는 북 유럽과 독일계 이민이 많은 것도 원인의 하나로 꼽힌다.
이런 미네소타에 한국어 마을(Concordia Korean Language Village)이 있다. 미네소타 북부의 소도시 베미지(Bemidji)에 있는 한국어 마을은 한류라는 말이 나오기 훨씬 전에 생겼다. 콘코디아 대학의 산하 기관이 시작한 다중 언어 프로그램 중 하나다. 1961년 독일어 마을부터 시작한 콘코디아 랭귀지 빌리지에는 현재 한국어 등 14개 외국어 캠프가 운영되고 있다. 50개 주와 세계 25개국에서 온 청소년들이 캠프를 거쳐갔다. 클린턴 전대통령의 딸 첼시도 이 캠프 출신이다.
한국어는 지난 1999년 시작됐다 한국어가 이처럼 이른 시기에 도입된 데는 미네소타 한인 입양인들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한국어 마을에는 빈 자리가 많았다. 전환점은 한류였다. 7~8년전부터 신청자가 늘기 시작했다. 지금은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기다려도 참가하지 못하는 신청자가 적지 않다.
‘한국 흠뻑 젖기’가 이 한국어 몰입 교육기관의 학습법. “하루 종일 한국말만 하겠습니다”고 다짐하는 미국 청소년들이 촌극, 민속놀이와 전통 춤, 태권도와 붓글씨, 직접 만들고 맛보는 한식 등을 통해 한국을 알아 간다. 물론 지금은 K 팝 댄스 강습이 가장 핫 하다.
매년 참가자는 7~18세 청소년 120명. 이들은 2주나 한 달 일정의 여름 캠프를 통해 자연스럽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접하고, 익히게 된다. 한국을 경험하고 즐기면서 한국의 친구가 되어 가는 것이다. 캠프 스태프 중에는 UC어바인 출신의 한국어 교사, 하버드 예일 등 미국대학 졸업생, 한국에서 온 대학생, 세 아이가 있다는 LA 한인 주부도 있다.
나무 우거진 호수가에 800에이커 대지가 마련돼 있지만 모든 랭귀지 프로그램이 자체 마을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어도 러시안 빌리지를 빌어 사용해 왔다. 내년에 숙소 공사가 끝날 한국어 마을 ‘숲 속의 호수(Sup Sokui Hosu)’는 8번째 마을이 된다. 중국과 일본어 캠프는 한국어 보다 10년 이상 먼저 시작됐으나 아직 마을이 없다. 한국어 마을이 먼저 들어서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한인 기업인들의 기부 덕분이다.
몇 년 전 한국의 한 기업인이 500만달러를 기부해 식당과 오피스 건물이 들어섰다. 현대화된 한국 공간으로 디자인됐다. 하지만 자금이 부족해 숙소 건물을 지을 수 없었다. ‘3플러스 로지스틱스’ 등 물류와 운송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LA의 김영석 회장이 이 사실을 알고 지난해 100만달러 기부를 약속했다. 여기 힘입어 각각 36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소 건물 2개 동 공사가 지난 여름 시작됐다. 미주 한인으로는 첫 거액 기부라고 한국어 마을측은 전한다. 돈은 여러 일을 할 수 있지만 이런 일을 할 때 그 힘이 돋보인다.
한국어 마을을 말하면서 촌장님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한국어 마을 촌장은 주다희라는 고운 한국 이름을 가진 다프나 주르 교수. 스탠포드 대학 동아시아 언어문화학부 교수이자 이 대학 동아시아 연구센터 소장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2000년부터 다양한 역할로 한국어 마을에 참여하면서 10년 전부터 촌장을 맡고 있다. 태권도 3단인 그녀는 전화로도 열정과 에너지가 느껴지는 사람. 주 촌장은 숙소 2동이 더 있어야 캠프 참가자를 다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문화센터와 스포츠 시설을 더하고 싶어 한다. 지금까지 든 공사비만큼 더 있어야 가능한 2단계 프로젝트인데, 이뤄지면 가족 단위 프로그램 등 더 다양한 캠프 운용을 꿈꿀 수 있다.
은퇴 시기가 된 1세들이 늘면서 요즘 한인사회에는 알게 모르게 기부문화가 번지고 있다. 촌장님은 베미지 시 10115 소나무길(Sonamukkil)이 주소지인 ‘숲 속의 호수’에 대한 관심을 요망한다. 캠프 참가자의 15% 는 한인 2세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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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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