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과거에 페어팩스카운티 교육위원회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 몇 명과 저녁식사를 같이 한 자리에서였다. 대화 중 내가 미국에 이민 와서 겪었던 문화충격 이야기도 몇 가지 나누었다.
내가 이민 와서 한 1주일 정도 지나서였다. 당시 알렉산드리아 시에서 9학년과 10학년만 다니는 학교에 첫 등교하는 날이었다. 살던 아파트 가까이에 위치한 스쿨버스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 곳에는 다른 학생들도 여럿 있었다. 그런데 나보다 키는 컸지만 나이는 아래인 학생들이었다. 대학에 진학하기 전 영어를 조금이라도 더 배우기 위해 내가 일부러 한 학년을 낮추어 등록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인 그 날, 나는 가능하면 다른 학생들의 시선을 피했다. 우선 언어 소통이 안 되었다. 한국에서 배웠던 영어로는 그들이 하는 말을 극히 부분적으로 이해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아시안은 나 혼자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학교 전체에 ESL 학생이 나를 포함해 총 4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의 눈을 피하려는 나에게 끈질기게 말을 걸어오는 학생이 있었다. 애써 외면하는데 나에게 계속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안 듣는 척했지만 내 나름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했다. 상대도 내가 잘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점점 천천히 했다.
그런데 별안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했다. 그것도 속어로. 그리고 그것을 듣는 순간 너무 놀랐다. 아니 나 보고 성관계를 가져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 게 아닌가! 이건 뭐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해도 되나? 그리고 겨우 13-4세 정도 밖에 안 되어 보이는 어린애가 말이야. 과연 이게 미국 문화인가? 충격이었다.
내 얘기를 듣던 전 동료들이 웃는 사이에 나는 또 다른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때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모두 바짝 긴장하는 듯했다. 고등학교 11학년을 마치고 여름방학에 가버너스 스쿨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라고 했다. 당시 어느 여자대학교 기숙사에서 4주 정도 머물며 진행되었던 프로그램이었는데 기숙사생활 감독을 그 대학교 여학생들이 맡았다.
프로그램 기간이 거의 다 지나 갈 때쯤에는 어느 정도 서로 친해질 수도 있었지만 미국에 온지 2년 밖에 안 된 나에게는 아직도 미국인 여자들과 대화를 갖는 것조차 어색했다.
그런데 4주 모두 마치고서였다. 짐을 싸서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려고 기숙사 밖에서 정류장 방향으로 걸어 나가는 참이었다. 그 때 마침 내 기숙사 담당 생활감독 여대생이 나를 보더니 다가왔다. 그러더니 잘 가라고 인사하면서 나를 덥석 껴안는 게 아닌가! 그 때까지 엄마 외에는 여자에게 안겨본 기억이 없는 나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단 몇 초에 불과했을 그 안김이 나에게는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었다.
이 이야기를 듣던 전 동료 교육위원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 된 아시안 이민자 학생이 겪었던 문화충격 이야기들이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이제 미국에 산지 반세기나 되어가는 나에게 더 이상 그런 충격은 없다. 그러나 요즈음 오히려 역으로 충격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 나의 조국인 한국으로부터의 뉴스에서 말이다.
그 가운데에는 미국에서는 민사 사건으로 처리되는 일들이 한국에서는 형사 고소로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명예훼손, 직무유기, 선출직 후보자들의 허위사실 유포 등이 있다.
민사소송을 통한 손해 배상이나 언론을 통한 진실 규명, 비판과 견제 등으로 다루어야 된다고 보이는 일들이 한국에서는 형사사건으로 처리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권보호 차원에서 매우 엄격하게 심사되어야할 형사사건에서의 인신 구속 비율이 미국에 비해 훨씬 높은 것 같다.
물론 나라마다 법체계와 문화가 다를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이제 거의 40년가량 변호사 일을 해오는 나에게는 내 조국의 이러한 모습이 갈수록 더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제 경제적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우리 조국이 이러한 법체계와 문화에 있어서도 과연 선진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나라는 질문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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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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