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YT, 해외 입양 한인 실태 조명
▶ “출산 도중에 기절한 생모 속여…사산했다며 덴마크로 입양 보내” 아이 1명 입양 수수료 5,000달러, 고아원·병원 돌며 금품 뿌리기도…“신원 세탁·서류조작 등 수사해야”
덴마크 한국인 진상규명 그룹(DKRG)과 국내입양인연대 등이 작년 1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방문해 해외입양인 인권 침해 진실규명 신청서를 제출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과거 한국의 한 입양기관이 해외로 가는 비행기에서 입양 대상 아동들 돌보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어릴 적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미아 리 소렌슨은 지난해 한국을 찾아 충격적인 ‘입양의 비밀’을 알게 됐다. 소렌슨은 입양 기록을 토대로“1987년 출산 예정일보다 먼저 태어난 그를 생물학적 부모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입양시켰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소렌슨이 어렵게 찾아내 만난 부모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소렌슨이 사산된 줄 알고 평생을 살아왔다”는 것. 출산 도중 기절했다 깨어난 어머니에게 병원 관계자가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인신매매나 다름없다”고 소렌슨은 말했다.
17일 뉴욕타임스(NYT)는 한국의 해외 입양 실태를 재조명했다. 입양된 한인 12명을 인터뷰하고 최근 기밀이 해제된 미국 정부 문건을 분석한 결과 등을 바탕으로 “한국의 부패한 입양 시스템은 최근까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한국은 2021년 기준 콜롬비아, 인도, 우크라이나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해외 입양을 많이 보낸 국가”라는 것이다.
■연봉보다 많은 수수료
NYT는 “한국은 세계 최대 해외 입양 디아스포라(고국을 떠나 타국에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를 가지고 있다”며 1953년 이래 20만명의 한국 아이가 해외로 보내졌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이러한 한국의 ‘아기 수출 사업’이 뿌리 깊은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와 혼혈아에 대한 편견에서 처음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6·25 전쟁 이후 이승만 대통령의 일민주의 이념이 주한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의 혼혈아를 미국으로 떠나보내도록 부추겼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직후 한국 정부는 취약 지대 아이들을 돌보는 대신 해외로 ‘수출’했다. 주한미군과 한국 성노동자가 낳은 혼혈아, 고아, 한부모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 등이었다. 1965년 한국 여성과 흑인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미키 우 플리펜은 어린 시절 이웃에게 당한 인종 차별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는 10대 때 어머니가 사망하자 미국 오리건주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NYT는 “1960년대 후반까지 해외로 입양된 아이는 대부분 한부모에게서 태어났다. 한국에서 이 아이들은 또 다른 편견의 대상이었다”고 했다.
복지 비용이 아까웠던 정부는 해외 입양을 활성화했다. 입양 절차를 간소화했고 홀트아동복지회 등 민간기관 4곳에 입양 업무를 위탁한 뒤 입양 수수료를 기관이 챙길 수 있도록 했다. 1980년대 입양아 1인당 입양비·수수료는 4,500~5,500달러로 1인당 평균 국민소득보다 많았다.
NYT는 한국 국가기록원 문서를 인용해 “입양기관들은 (더 많은 입양아를 확보하기 위해) 고아원과 병원 등에 현금과 선물을 나눠 줬다”고 전했다. 아동을 항공편으로 ‘배송’하는 시스템도 개발됐다.
■미혼모 등이 표적
한국 최대 입양기관 홀트의 부청하씨가 처음 수행한 업무 역시 미군기지 인근 성매매 업소 종사자들에게 혼혈 자녀의 해외 입양을 설득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NYT는 1960년대 말부터는 미혼모의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미혼모가 “한국 편견의 또 다른 표적이 됐다”고 지적했다.
NYT에 따르면 1978년까지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부씨는 당시 매주 금요일 전국에서 20명에 달하는 아기가 홀트로 몰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아이들은 정보가 없어 의사들이 치아를 보고 나이를 가늠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기관에 도착하자마자 사망한 아기들은 출생 등록도, 사망 등록도 하지 못한 채 홀트 소유의 땅에 묻혔다.
NYT는 1970년대에는 한국이 해외 입양 중단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1980년대 이민 및 민간 외교를 추진한다는 명목하에 다시 해외 입양 산업을 복구시켰다고 설명했다. NYT는 “국제 언론들은 한국을 ‘아기 수출국’, ‘우편 주문 아기’ 등으로 지칭하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강압·뇌물·서류조작 만연
이 과정에서 소렌슨 같은 불법 입양 피해자가 발생했다. “서류에는 ‘고아’로 적혀 있지만 생물학적 어머니와 시장에 갔다가 납치된 기억이 난다”, “삼촌이 내 아버지의 허락도 없이 나를 덴마크로 입양 보내면서 이름을 비롯한 정보를 날조했다는 사실을 30년 뒤에야 알게 됐다” 같은 증언이 NYT에 실렸다.
덴마크한국인진상규명그룹(DKRG)의 피터 묄러(한국명 홍민·49) 공동대표는 “1970~1990년대 덴마크로 한국 아이들이 대거 입양되는 과정에서 뇌물수수, 서류조작, 입양아 신원 세탁, 입양 강요 등 불법행위가 발생했다”며 한국 정부의 본격적인 조사를 촉구했다. 지난해 12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의 해외 입양 인권침해 조사를 시작했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대체로 무관심하다.
NYT는 “한국은 해외 입양 한국인들의 성공담에만 초점을 맞추지만, 최근 몇 년간 귀국한 사람들(입양인)은 정체성과 소속감에 대한 의문에 시달리고 있다”고 적었다.
보도에 따르면 일부 입양인들은 2005년 한국 정부에 과거 입양 산업의 부패에 대해 조사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국가 차원의 시선을 끌지 못해 끝내 좌절된 바 있다. 다만 작년 8월 ‘덴마크 한국인 진상규명 그룹’(DKRG)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진상 규명을 요청했고, 이에 따른 조사가 착수됐다.
NYT는 이를 언급하며 “한국이 사상 처음으로 입양 산업에 대한 정부 공식 조사를 개시했다”며 “조사단은 (내년) 봄까지 조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국이 역사적 잘못을 바로잡는 데 집착하지만, 정작 뼈아픈 입양의 역사를 인정하는 데 있어선 실패했다는 한국계 입양인 진 메이어슨의 지적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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