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배터리 ‘미 노조의 덫’
▶ 한 업체 많은 배터리 합작사 타깃, 자동차 노동자와 동일임금 요구…인력 확보·생산 안정화 등 차질
목표수율 확보·납품계획 악영향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미국 진출에 나선 국내 배터리 기업이 예상치 못한 ‘노조’라는 복병을 만났다. 미국의 대표 강성 노조인 전미자동차노조(UAW)가 자동차 업계와의 단체교섭에서 대규모 임금 인상과 더불어 전기차 배터리 공장 근로자의 처우 개선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 전기차 시장의 가능성과 조 바이든 행정부의 지원을 믿고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한 K배터리 업계는 사업 안정화까지 갈 길이 먼 상황에서 또 다른 부담을 떠안게 됐다.
6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와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UAW는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 등 디트로이트 자동차 3사와 4년 만에 진행한 단체교섭에서 배터리 공장 근로자의 임금을 자동차 공장 수준으로 높이는 것을 핵심 내용 중 하나로 요구했다.
전기차 분야에서 막대한 적자를 보고 있는 미국 자동차 기업들은 “투자 여력이 훼손될 것”이라며 선을 긋고 있으나 UAW는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2019년 단체교섭 당시에도 UAW와 GM의 입장이 충돌하면서 6주간의 파업이 발생했다. 특히 올해는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둔 터라 바이든 행정부 역시 UAW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UAW는 이번 단체교섭에서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조합원들이 최고경영자(CEO)들과 맞먹는 수준의 임금 인상률을 적용받아야 한다며 40%의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특히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에 고용된 노동자에게도 UAW 국가 계약을 적용하거나 적어도 이에 상응하는 임금과 안전 요건을 보장하라는 요구 사항을 포함시켰다. 배터리 공장은 대부분 미국 업체와 외국 업체의 합작공장으로 UAW의 영향력 밖에 있음에도 이를 노조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국 자동차 노조의 이 같은 요구 이면에는 전기차 시대를 맞아 공장 노동자가 크게 감소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UAW는 자동차 산업이 오랫동안 공장 일자리를 지원해온 내연 기관 자동차에서 전기차로 전환함에 따라 조합원들을 위한 고용 안정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조의 장기적인 생존 방안을 강구하는 과정에서 한국 업체들의 진출이 많은 배터리 합작공장들이 표적이 된 셈이다.
숀 페인 UAW 회장은 실제 GM과 LG에너지솔루션이 운영하는 오하이오 배터리 공장이 시급을 16.50달러로 책정한 것을 배터리 공장의 열악한 환경을 보여주는 사례로 지목했다. 미국 정부가 포드와 SK온의 합작회사인 블루오벌SK에 92억 달러의 저리 대출을 해준 것을 두고도 “임금과 근로 조건, 노조의 권리, 퇴직 보장 등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대규모 공여”라고 맹비난했다. UAW는 미 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배터리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고 있는 만큼 배터리 공장 노동자의 임금 및 근로 환경 조건까지 정부가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자동차 업계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GM은 “UAW의 요구가 장기적으로 우리의 생산능력을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의 뜻을 밝혔다. 스텔란티스 역시 “어떤 합의도 차량과 기술에 계속해서 투자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UAW의 움직임에 현지에서 합작공장을 가동하거나 설립 중인 국내 배터리 업체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GM·스텔란티스·현대차·혼다 등과 합작공장을 짓고 있거나 가동 중이다. SK온도 포드와 손잡았고 삼성SDI는 GM·스텔란티스와 합작사를 세울 계획이다. 한국 기업들은 최근 수요 증가에 대비해 추가 투자 계획도 수립한 상태다. UAW의 임금 인상 요구가 받아들여지거나 협상이 결렬될 경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배터리 생산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배터리 산업은 신규 공장 설립 이후 수율을 신속히 높여 생산을 안정화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작업은 최장 수년이 걸린다. 업계에서는 UAW의 영향력이 배터리 산업으로 확산되면 생산 안정화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본다. 수율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는 근로자의 숙련도인데 노사 갈등이 벌어지면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탓이다. 여기에 현지 여론까지 가세한다면 인력 충원 등에서도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숙련된 근로자를 확보해야 수율을 신속히 높일 수 있다”며 “목표한 수율을 확보하지 못하면 완성차 제조사에 납품하는 계획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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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욱 기자·워싱턴=윤홍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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