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드디어 8월1일 할리웃보울에서 연주한다. LA필하모닉과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협연이다. 이 공연은 성시연(오클랜드 필하모닉 수석객원지휘자)이 지휘를 맡아 더 기쁘고 뜻 깊다. 사실은 연주를 보고난 후 쓰고 싶었으나 화요일 밤 열리는 공연의 리뷰를 수요일자 칼럼에는 쓸 도리가 없어서, 그리고 한주 지난 다음에 쓰면 김이 빠질거 같아서 먼저 기다리는 글을 쓰게 되었다.
작년 6월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의 우승 이후, 남가주 한인들은 1년 넘게 임윤찬을 기다려왔다. 올해 초 발표된 할리웃보울 일정에 그의 이름이 포함되자 흥분이 시작되었고, 그룹티켓 예매가 시작된 3월부터는 각종 동호회, 동문회, 교회 등 단체들이 줄이어 티켓을 수십 수백장씩 구입했다. 아마도 이날 청중의 절대다수는 한인일 것이다.
임윤찬에 대해선 따로 설명이 필요 없겠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의 우승 이후 그는 세계 음악계에서 ‘신드롬’이자 ‘현상’이 되었다. 세계 유수 공연장과 최정상 오케스트라들의 초청이 쇄도하고 있고, 그의 연주를 따라다니는 팬들은 ‘간증’처럼 감상후기를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연주 직후 찍은 동영상들(연주실황은 촬영금지이므로)을 보면 기립한 청중들의 반응이 마치 록 가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
이제 겨우 19세의 클래식 음악인에게 이처럼 대중적인 열광과 찬사가 쏟아지는 일은 아마 처음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런 급의 인기와 찬사를 누린 사람은 파가니니와 리스트, 20세기 들어서는 마리아 칼라스와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번스타인과 카라얀 정도가 아닐까… 생각해보지만 사실 유튜브와 소셜미디어 시대의 애송이를 이런 거장들과 비교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거나 관심 없던 사람들조차 임윤찬 팬을 자처하는 것은 물론이요, 음악계 최고 위치에 있는 사람들조차 그의 연주에 놀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것을 보면 ‘괴물급 신동’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아 보인다.
지난 5월 뉴욕 필하모닉과의 라흐마니노프 3번 협연에 대해 뉴욕타임스 평론가 재커리 울프가 쓴 리뷰는 다시 읽어보아도 파격 그 자체다. “훌륭한 연주자를 보고 꿈처럼 연주한다는 말을 쓰곤 하는데 임윤찬은 정말, 문자 그대로, 꿈처럼 연주했다”로 시작되는 그의 리뷰는 맨 마지막 문장까지 경이로운 찬사로 일관한다. 명료하고 자신감 넘치는 테크닉, 부드러운 음색, 두려움 없는 강렬한 타건, 심지어 악절들 사이에 느껴지는 유머와 시적 감흥… 재커리 울프의 음악평을 적잖이 읽어보았지만 이처럼 흥분해서 구구절절 극찬한 리뷰는 본 적이 없다.
이 공연을 지휘했던 제임스 개피간 역시 그의 음악성과 성숙도를 높이 평가하면서 “함께 연주한 것이 영광이었다”고 극찬했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연주 때 눈물을 훔쳤던 지휘자 마린 알솝은 한 인터뷰에서 “무대에서 마지막으로 울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당시의 감동을 전하면서 임윤찬은 “깊이를 헤아리기 힘든 음악성에 경이적인 재능과 가공할 테크닉을 겸비한 애늙은이(old soul)”라고 말했다.
콩쿠르에서 마린 알솝과 특별한 연대감을 형성한 임윤찬은 올여름 두 차례에 걸쳐 그녀와 함께 라흐 3번을 다시 연주한다. 오늘(7월26일) 콜로라도주 브라보!베일 뮤직페스티벌에서 뉴욕필과 함께, 그리고 8월5일 라비니아 뮤직페스티벌에서 시카고심포니와의 협연이다.
센세이셔널 했던 라흐 3을 직접 듣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아서 임윤찬은 앞으로도 한동안 이 곡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같은 레퍼토리를 수없이 연주하면 그때마다 같은 감동이 올까? 걱정하는 사람은 마음 놓아도 되겠다. 많은 훌륭한 연주자들이 그렇듯, 임윤찬도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다 잊어버리고 음악에만 몰입한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지난 5월 뉴욕 필과의 3일 연주를 모두 들은 사람도 사흘 모두 연주가 달랐다고 전한다. 앙코르곡마저도 모두 달랐단다. 그러니 성시연과 함께 들려주는 라흐 3번은 또 어떨지 기대해도 좋으리라.
임윤찬의 라흐 3 때문에 생겨난 재미있는 현상이 하나 있다. 요즘 국제피아노 콩쿠르에서는 아무도 라흐 3을 안 친다고 한다. 원래 라흐 3번은 고난도 테크닉을 과시할 수 있는 협주곡이어서 콩쿠르 결선의 단골 레퍼토리로 유명하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 때도 임윤찬 포함 결선 진출자 6명중 3명이 이 곡을 쳤었다. 그런데 이젠 아무도 안 친다니 왜 그럴까?
“이제 라흐 3은 윤찬이꺼니까.”(Yunchan owns Rach 3 now.) 지난 3월 루빈스타인 콩쿠르의 출전자들 사이에 오간 이야기다. 임윤찬이 워낙 기준을 높여놔서 감히 도전하지 못한다는 것,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콩쿠르 레퍼토리에서 찾아볼 수 없으리란 이야기다.
임윤찬은 인터뷰를 많이 하지 않고 말도 느리고 어눌하다. 많은 인터뷰를 찾아봤는데 그중에서 가장 놀랐고, 뭉클했고, 아름답다고 느낀 이야기는 밴 클라이번 콩쿨 직후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세상에 진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또 저는 음악가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음악을 대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저는 음악이 세상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진짜라고 생각해서, 인간에게 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열여덟 살, 볼에 여드름이 솔솔 난 앳된 소년이 이렇게 깊은 말을 했다. 음악을 통해, 음악을 넘어 구도자의 반열에 올라선 피아니스트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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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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