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 유럽의 마녀사냥은 누군가에는 수지맞는 사업이었다. 마녀로 지목된 사람이 온갖 고문을 못 견디고 거짓 자백해 화형에 처해지면 몰수된 전 재산은 고발자가 차지했다. 주로 가족이 없고 재산이 많은 하층 계급의 과부가 마녀로 몰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사업 경쟁자나 정적 등도 타깃이 됐다. 마녀 감별 장치나 고문 장치를 만들어 돈을 버는 사람도 생겨났다. 대기근과 흑사병, 종교전쟁 등과 같은 재난이 잇따르자 힘이 약화된 성직자들과 귀족들이 사회적 불만을 억누르기 위해 희생양을 찾은 게 마녀사냥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무려 300년 가까이 지속된 광기의 근본 동력은 미지의 영역에 대한 공포, 이를 악용한 인간의 탐욕과 이해관계였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 처리수 방류 문제로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극한 갈등과 대립을 겪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공포 조장과 괴담 유포로 정파적 목적을 달성하고 개인적 이익마저 챙기려는 세력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실 오염 처리수 방류가 해양 생태계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과학적으로 무의미한 수준이라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어도 금방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조차 “국제원자력기구(IAEA) 기준에 맞는다면 오염 처리수 방류에 굳이 반대할 건 없다”고 밝혔을 정도다. 하지만 태도를 바꾼 거대 야당과 친야 시민단체는 주장과 사실을 뒤섞고 주관적인 미래 예측을 과장해 윤석열 정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
정부와 여당도 국민과의 소통 실패라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덕수 총리는 “후쿠시마 오염수가 과학적으로 처리돼 우리 기준에 맞는다면 마실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 감정은 외면한 채 정치외교적 문제를 과학으로만 풀고 있는 셈이다. 가령 누군가 거대한 식수조에 침을 뱉었다면 많은 양의 물에 희석돼 무해하다 하더라도 누가 먹고 싶겠는가. 정부는 2008년 광우병 파동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당시 ‘뇌송송 구멍탁’이라는 코미디 같은 괴담이 기승을 부린 것은 한국이 미국의 꼭두각시로 농락당했다면서 국민적 자존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반일 감정은 반미 의식보다 더 강고하다. 일본은 오염수 바다 방류라는 가장 값싼 해결책을 선택하고도 주변국에 대한 성의 있는 유감이나 사과조차 없는 상태다. 또 윤 대통령은 강제 동원 피해자, 위안부 문제 등 과거를 딛고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만들어가자고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역사 교과서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등으로 찬물을 끼얹고 있다. 상당수 국민들에게는 “오염수 배출 기준과 목표치가 국제 기준에 부합한다”는 정부 입장이 대일 굴종 외교로 비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은 과거 광우병 사태나 사드 배치, 천안함 침몰 때와 달리 괴담의 위력이 예전만큼 크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여당의 공이 아니라 과학자들의 분전 덕분이다. 이들이 제시한 과학적 사실 앞에 어설픈 선동들은 번번이 깨지기 일쑤다. 그동안 우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여러 분야에서 전문가 행세를 하는 인사들을 숱하게 많이 봐왔다. 결과는 지적 환경의 피폐와 사회 갈등 심화였다. 문 정부 당시에는 얼치기 전문가들이 밀어붙인 소득주도성장론과 부동산 정책이 양극화만 심화시켰다.
그동안 사회적 발언을 자제하던 과학자들이 침묵을 깬 것은 사실 한풀이 성격이 짙다. 문 정부는 탈 원전 정책으로 원전 생태계를 망가뜨렸고 신성철 KAIST 총장을 고발하는 등 과학계 일부를 적폐로 몰았다. 이 같은 반지성주의에 또다시 휘말리지 않으려면 과학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사회적 공론을 주도해야 한다. 엄청난 양의 정보가 쏟아지는 지금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통찰력을 발휘하기 힘든 시대다. 더구나 팬데믹과 기후변화, 반(反)세계화와 신냉전 도래 등 초거대 위협이 눈앞에 닥치면서 전문 식견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서구의 마녀재판이 자취를 감춘 것도 인간들의 탐욕 자제가 아니라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이성적 세계관의 확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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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욱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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