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거리는 걷는다. 그동안 아무리 가까운 곳이라도 목적지까지 걷는 적이 없었다. 자동차로 몇 분이면 갔다 올 곳을 이삼십 분씩 걷는 건 시간낭비라 생각했다. 차를 교체할 시기 잠시 차의 공백기간이다. 외출할까 말까 망설이다 다녀올 곳까지 걷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한 발짝씩 내딛는데 가로수의 튼실한 나무가지에서 새들이 무리지어 종알댄다. 새들 소리에 귀가 맑아진다. 파란 하늘 바탕에 구름이 한가롭다. 몸을 스치는 바람도 친근하다. 화창한 날씨 덕분일까 몸과 마음이 상쾌하다. 잰걸음으로 걷는 속도를 늦춘다. 빠르게 지나치기 아까운 것들이 나를 휘감는다. 천천히 걸으며 지금 나랑 함께 하는 것들을 느끼며 가슴 설레다니!
몸속 깊은 곳에서 환희로움이 솟아난다. 콧노래 흥얼거린다. 저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빠른걸음으로 지나치던 행인들이 얼굴에 미소지으며 살짝 목례를 한다. “Isn’t it beautiful day.” 라며 마주치는 이에게 나도 모르게 인삿말이 튀어나온다.
“yes. it is.” 환하게 웃는 얼굴로 동감하며 한 손을 들어보인다. 선명한 새소리, 하늘, 구름, 바람, 풀꽃, 나비, 벌레 그리고 잘 가꿔진 정원의 꽃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살피며 걷는다. 새로운 세상이 멀리 있지 않다. 지금 여기에 있다. 차가 없다 보니 매사가 조금 느려진다.
음식하다가 필요한 것 있으면 바로 차 타고 가 사오지 못한 불편함이 요즈음 나에겐 여유로 다가왔다. 먼저 구입을 생각하던 때와 달리 집에서 찾는다. 언젠가 사다 둔 것들이 고개를 내민다. 한국에서 가져온 여러 종류의 마른나물부터 식재료가 생각보다 많다. 바쁘니 나중에 해 먹겠다는 핑게로 뒷쪽으로 밀어 구겨넣어둔 것들이다.
취나물, 고구마줄기, 호박말림, 마른버섯, 말린 고사리, 무말랭이 등. 물에 불리고 삶고 씻고 양념해 볶는 과정이 자신을 살피는 계기가 된다는 것에 전율을 느낀다. 식재료 하나 하나에 나름의 고유성이 돋보이고 여기 나에게 오기까지의 과정이 정돈된 도표처럼 보인다. 그와 관련된 이의 얼굴 표정, 눈빛, 목소리가 떠올라 마음이 풍성해진다. 그들의 안녕을 바라며 양념에 넣을 마늘을 다진다.
외출이 줄어지니 자신에게 할애 할 시간이 있다.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진 나. 바쁘게 능률 올리는 일이 잘 사는 일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마음의 여유’를 가질 것과 ‘자아성찰’ 의 필요성 누누이 언급하면서 정작 자신은 그럴 여유를 뒷전에 두고 살았음을 깨달았다. 밤하늘 달님과의 대화도 한동안 잊었다. ‘꼬리 무는 일들이 자신을 허덕이게 했다’는 내 밖의 원인에 집중하며 지냈던 나였다. 그렇게 스스로 자신을 변명하며 지낸 자신이 보였다.
단순한 일상에서 잠시 멀리한 문명의 이기가 스스로 성찰하는 힘을 준 것이다. 짐짓 놀랬다. 그리고 기쁨의 안심이 함께했다. 그동안 나를 후원해준 분들께 고마움 전한다는 메모를 수없이 적어 놓았지만 대충 드릴 수 없는 글이어서 자꾸 미뤄졌다. 들뜬 마음이었음을 자백한다. 이대로 그냥 계속 ‘차 없이 살아?’ 생각하니 지난 일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진다.
합동법회가 있는 날, 15인승 밴에 함께 타고 갔다가 오는 길에 고속도로에서 고장으로 멈춰버린 차. 우여곡절 끝에 911로 경찰의 도움을 받아 마당 같은 픽업트럭에 여러사람이 탑승한 밴을 통째로 실어 옮기는 과정에서 몇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동안 더위 속에서도 한마디 불평 없었던 신도님들, 픽업트럭 안전을 위해 앞뒤로 경찰차 호위받으며 가는 도중, ‘대통령 예우받는다’는 위트와 밝은 마음으로 함께 노래 부르며 어려운 시간을 견딘 노보살님들의 여유는 그냥 와준 것이 아닌 수행의 힘이었다. 그날 내게 차가 있었다면 분명 몇 분 모시고 갔을 것이다.
누군가 도움 줄 수 있는 기회는 놓쳤지만 여러 신도님들과의 추억을 만들었다. 아무일 없음을 무사하다 하지만, 삶의 묘미는 고통이나 무질서 안에서도 찾을 수 있음을 알았다.
단순한 일상에서, 여유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 매순간이 생활의 활력을 분출할 기회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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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원/뉴욕불교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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