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친 유해 국립호국원 안장 위해 방문하려다 국적이탈 못한 30대 아들 ‘병역기피자’ 몰려
▶ 공관측 “미국 못 돌아올 수도” 애매한 답변
한국의 선천적 복수국적법의 독소조항으로 인해 미국 태생 한인 2세들의 피해 사례가 잇따라 나오고 있는 가운데 복수국적 문제로 월남전 참전 국가유공자의 가족이 한국 방문을 하지 못하는 황당한 상황에 처했다. 이에 따라 새로 출범한 재외동포청이 한국 국회와 함께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재외동포 정책으로 이른바 ‘홍준표 법’이라 불리는 선천적 복수국적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본보 5일자 A1면 보도)가 더욱 커지고 있다.
뉴욕에 거주하는 한인 백정순씨는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난 남편 백두현씨를 고인의 유지에 따라 국립 괴산 호국원에 안장하기 위해 아들과 함께 한국 방문을 준비하다 뉴욕 총영사관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선친의 유해를 모시고 가야 할 아들이 선천적 복수국적자이기 때문에 국적이탈을 마치기 전까지는 한국에 입국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백씨의 아들이 1986년 미국에서 태어났을 당시 부모 모두 영주권자였고, 아들을 한국 호적에 올리지도 않았지만 자동적으로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됐다는 설명이었다.
고 백두현씨는 1967년부터 1968년까지 백마부대 소속으로 월남전에 참전, 2000년 2월 참전용사 증서와 함께 고엽제 피해자임을 인정받고 2011년 11월 국가유공자 증서를 받았다. 미국에는 1984년 11월 이민 왔다.
뉴욕에서 유엔 직원으로 근무 중인 아들이 자신은 한국행을 포기할 테니 아버지 안장을 위해 어머니와 여동생만 다녀오라고 했지만 백정순씨는 “국가유공자인 아버지의 마지막 배웅길에 아들이 참석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애가 탄 백정순씨는 뉴욕 총영사관과 워싱턴 주미대사관에 국가유공자 남편을 한국에 안장시키려 하는데 아들이 한국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재차 문의했다.
그러나 공관에서는 어쩌면 백씨의 아들이 미국으로 못 돌아올 수도 있다는 애매한 대답만 되풀이했다. 백씨는 “속시원하게 ‘된다, 안된다’라는 말이라도 해주지 애매한 답으로 가슴을 찢어놓는다.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악법이 어디 있느냐”며 울먹였다.
선천적 복수국적법은 지난 2005년 당시 홍준표 한나라당 국회의원(현 대구시장) 주도로 일부 한국인들의 원정출산에 따른 병역기피를 방지할 목적으로 발의됐다. 이른바 ‘홍준표법’의 시행으로 1983년 5월25일 이후 미국 등 해외에서 출생한 한인 남성의 경우 출생 당시 부모 중 1명이라도 한국 국적자라면 만 18세가 되는 해 3월 말까지 국적이탈을 마쳐야 한다.
이 기간 안에 국적이탈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중국적을 갖게 돼 만 38세가 되는 해 1월1일까지 20년간 한국 내 병역의무 대상자가 된다.
한국에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경우 부모의 국적상실 신고-부모의 혼인신고-자녀의 출생신고가 선행돼야 한다. 이후에나 자녀의 국적이탈을 시작할 수 있으나 1년 이상 걸린다.
더욱이 백씨의 아들은 이미 정상적으로 국적이탈을 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친 케이스다.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통과된 예외적 국적이탈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공직에 진출하지 못한 불이익을 증명해야 하기에 국적이탈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선천적 복수국적법 개정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전종준 변호사는 “2006년부터 시행된 선천적 복수국적법 대상이 1983년 5월25일로 소급 적용돼 1986년생인 백씨 아들은 국적이탈 신고에 관한 통보도 받지 못했을 것”이라며 “부당하게 기본권을 침해당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전 변호사는 “선천적 복수국적법은 위헌적인 법인데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나 국회가 지난 18년 동안의 수많은 피해 사례를 마치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것은 헌법 2조 2항의 재외국민 보호 의무를 포기한 직무유기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말 선천적 복수국적 개정을 위한 국회 공청회에도 참석한 전 변호사는 “미국 등 외국에서 태어나 17년 이상 외국에 거주한 선천적 복수국적자로서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과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가 출생신고를 한 사람이 한국국적을 선택하지 않으면 출생 시까지 소급해 자동으로 국적이 상실되는 ‘국적 자동상실제’로 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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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정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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