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농성끝에 나와 보는 다부원(多富院)은 /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 피아(彼我) 공방(攻防)의 포화(砲火)가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 아아 다부원은 이렇게도 / 대구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고나 // 조그만 마을 하나를 / 자유의 국토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 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 이 황폐한 풍경이 / 무엇 때문의 희생인가를…. // 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대로 / 머리만 남아 있는 군마(軍馬)의 시체(屍體) // 스스로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 길 옆에 쓰러진 괴뢰군 전사(戰士) // 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 움직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 // 싸늘한 가을 바람에 오히려 / 간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 // 진실로 운명의 말미암음이 없고 /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면 / 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안식(安息)이 있느냐. //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은 / 죽은 자도 산 자도 다 함께 / 안주(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1950. 9. 26)
이 시는 6.25동란시 종군문인으로 참전한 조지훈 시인이 직접 목격한 격렬했던 다부동 전투(多富洞戰鬪) 의 참상을 그린 <다부원에서>라는 제목의 시이다.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유학산 기슭에 건립된 ‘다부동지구전적비’와 ‘기념관으로 향하는 초입에 세워진 ‘조지훈 시비’에 새겨져 있다.
이 시는 단순한 전쟁 시가 아니라 차원 높은 휴머니즘이 담겨 있다. 시의 마지막 결구 속에는 죽은 자와 산 자의 대비를 통해서 전쟁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며, 동시에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에 대한 뼈아픈 깨달음이 들어있다.
다시 말해 역사 속에서 전쟁이란 영원한 승자도 없고 영원한 패자도 없는, 불행하고 허망한 인간성 상실 내지 파멸 행위에 불과하다는 날카로운 비판과 그에 대한 저항의식이 함축(含蓄)되어 있다.
1950년 시작된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동란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이 다부동 전투를 비롯한 낙동강 방어전선에서의 헌신적인 전투가 없었다면 부산 임시정부까지 함락될 수 있었고 그렇게 되었다면 아마도 오늘날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다부동 일대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칠곡 주민들은 나라 사랑의 모범을 보였다. 아낙네들도 주먹밥을 만들어 힘을 보탰고 학생들도 긴급 모병에 지원하고 여학생들도 의료·구호에 나섰다.
이 전투는 328고지 주인이 무려 15번이나 바뀔 정도로 쟁탈전은 치열했다. 이 전투에서만 아군은 1만여 명이, 북한군은 1만7,500명이 전사했다. 고지전 뒤에는 지게를 둘러맨 민간인들(KSC: 한국노무대, 소위 지게부대)이 식량과 포탄을 날랐다.
보급 물자를 전달한 뒤 산에서 내려갈 때 부상병을 실어 야전병원에 보내는 역할도 했다. 이들은 전쟁의 참혹함에 가려진 숨은 영웅들이다. 이 다부동 전투(8.3∼8.29)에서 하루 평균 50여 명의 지게부대원들이 전사했다.
아들도 전장에 참전한 미8군사령관이자 유엔사령관인 밴플리트 장군은 “만약 지게부대(A- frame Army: A 특공대)가 없었다면 최소한 10만 명의 미군을 추가로 파병했어야 했다”면서 이들의 활약을 극찬했다.
6.25 동란이 발발한지도 어느덧 7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지게부대의 활약상을 상기하면, 진영 간 분열되고 불신이 만연한 요즘의 대한민국 국민이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나가야 할지를 일깨워 준다.
군번도 군복도 총도 없이 오로지 조국을 지켜야한다는 일념 하나로 전선을 누빈 지게부대원의 수칙은 “허리를 굽히고 앞만 보고 걸어라” 였다. 이분들이 온몸으로 외치고 있다. “지게를 지듯 겸허하게 반성하고 서로 화합하라.”
현재의 조국 대한민국은 6.25를 망각한 채 징비(懲毖)없이 동란직전 보다 더 치열한 진영간 대립을 되풀이하며 심각한 내홍(內訌)을 앓고 있다. 내우외환의 이 어려운 시기에, 이분들과 호국영령들이 전하는 무언(無言)의 외침은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는 준엄한 질책(叱責)으로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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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렬/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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