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돌방지 ‘가드레일’ 논의…대만·디리스킹 둘러싼 상호 진의 파악 나설 듯
▶ 시진핑, 블링컨 만날지도 관심…긴장완화시 한중외교 공간도 생길 수 있어
16일 중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블링컨 [로이터=사진제공]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18일부터 이틀간 베이징에서 친강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등과 만나 신냉전으로까지 불리는 미중 전략경쟁의 관리 방안을 논의한다.
미중간의 '정찰풍선(중국은 과학연구용 비행선이라고 주장)' 갈등으로 연기됐다가 4개월 만에 재추진된 이번 방중은 블링컨 개인의 장관 부임 후 첫 중국행이자, 바이든 행정부 출범(2021년 1월) 이후 미국 외교 수장의 첫 방중이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 때인 2018년 마이크 폼페이오의 방문 이후 미국 현직 국무장관으로는 5년 만에 중국을 찾는 것이다.
미국 국무장관이 5년 만에 중국을 방문한다는 사실 자체가 미·중의 심각한 갈등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번 방중의 중요성을 말해준다고 외교가는 보고 있다.
작년 11월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발리에서 첫 대면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 관계의 충돌 방지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 후속 협의를 위해 블링컨이 2월 방중하게 돼 있었는데 '정찰풍선' 문제로 연기된 이후 미중 갈등은 더 복잡해지고 심화했다.
그런 만큼 블링컨의 이번 방중은 양국이 작년 11월 발리 정상회담 이전으로 돌아가 새롭게 관계 안정화를 모색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중 양국발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미중 관계의 돌파구 마련으로 연결되긴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미국은 '충돌방지'를, 중국은 '미국의 대중국 압박 중단'을 각각 강조했다.
블링컨은 중국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16일(현지시간) "치열한 경쟁이 대립이나 충돌로 비화하지 않으려면 지속적인 외교가 필요하다"고 방중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개방적이고 권한이 부여된 소통 채널을 구축할 것"이라면서 "이를 통해 오해를 해소하고 오판을 피하면서 도전 과제에 대해 논의하는 등 양국이 책임 있게 관계를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 외교부 왕원빈 대변인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블링컨의 방중 협의에 대해 "중국 측은 중·미 관계에 대한 입장과 우려를 천명하고 자신의 이익을 결연히 수호할 것"이라며 미국은 내정간섭, 중국의 이익을 해치는 행위, 중국에 대한 억제·탄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왕 대변인은 이어 "미국이 중국을 가장 중요한 경쟁자이자 가장 중대한 지정학적 도전으로 보는 것은 중국에 대한 엄중한 오판"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현재의 미중 경쟁이 무력 충돌로 비화하지 않도록 하는 '가드레일(안전장치)' 확보를 블링컨 방중의 목표로 제시했고, 중국은 미국의 전반적 대중국 기조 변화를 통해 현재의 무한경쟁 구도를 보다 협력적인 방향으로 바꾸는 것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비유하자면 최근 수년간 맨주먹의 '막싸움'을 벌여온 미중이 정식으로 링에서 글러브를 깬 채 일정한 룰에 따라 싸우는 데 합의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는 작지 않다.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핫라인 등 메커니즘을 만들고, 고위 외교·안보 당국자 간의 소통 채널을 확보하는 한편, 가장 인화력이 큰 이슈인 대만 문제와 관련, 양국이 '레드라인'과 '마지노선'을 확인할 수 있느냐가 관건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중국을 반도체 등 핵심 산업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개념인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을 대체할 새 용어로 제시한 디리스킹(de-risking·위험제거·경제와 무역 등에서의 대중국 의존도 완화를 의미)을 놓고 양측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도 관전 포인트다.
최근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중국 공장의 반도체 첨단장비 반입 허용 기간을 연장하기로 한 것도 미국이 '디리스킹'을 표방하기 시작한 것과 무관치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그동안 '디리스킹'은 간판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셰펑 주미대사 등 중국 인사들의 공개적 평가였지만 중국도 블링컨으로부터 '진의'를 듣고 싶어 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라인 1인자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친강 부장이 블링컨 장관과 각각 회동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시진핑 국가주석이 블링컨 장관을 만날지 여부도 관심거리다.
2018년 6월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이 중국을 찾았을 때는 시 주석이 폼페이오와 만났다.
그러나 현재의 미중 관계는 그때보다 한층 더 악화했기에 그 전례를 중국이 그대로 따를지 속단키는 어려워 보인다.
시 주석은 방중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와 16일 회동하며 양국민 간의 우호를 강조했는데, 미국 정부를 대표해 중국을 찾는 블링컨 장관과도 만난다면 그것은 기존 대미 '정랭경온(정치적으로는 냉랭하고, 경제문제에서는 적극 협력)' 기조에서 변화해 당국간 관계도 개선하길 원한다는 메시지가 될 수 있을 전망이다.
블링컨 장관이 시 주석을 예방할 경우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 초청과 그것을 계기로 한 제2차 바이든-시진핑 회담에 대한 양국간 초보적 의사 교환이 이뤄질 수 있을 전망이다.
블링컨 방중 이후 미중 관계의 향배는 현재 심각한 갈등 국면을 보내고 있는 한중관계에도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의 설화를 둘러싼 한중 갈등의 골이 깊지만, 이번 미중 고위급 협의를 거쳐 대만해협 등에서 미중이 충돌할 우려가 감소할 경우 중장기적으로는 한중 외교 공간도 그만큼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온다.
다만 미중 관계가 개선되더라도 중국은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이전 문재인 정부 때처럼 '균형 외교'를 펴길 바라며 '민관분리' 기조하에 한국 정부에 대해선 압박과 견제를 이어갈 수 있다는 예상도 없지 않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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