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마가렛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가 있다. 1936년 6월 30일 출판 6개월 만에 백만 부 이상 팔리면서 1937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1939년 비비안 리(스카렛 오하라 역)와 클라크 게이블(레트 버틀러 역) 주연으로 영화화되며 1940년 제12회 아카데미상에서 각종 상을 휩쓴 할리웃의 기념비적인 영화이다.
그런데 2020년 6월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폭력으로 사망하고 전미 지역에서 ‘흑인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가 일어나면서 동영상 스트리밍서비스 HBO 맥스가 이 작품을 상영목록에서 빼버리는 수난을 당했다. 흑백차별과 노예제도를 미화, 인종적 편견을 묘사했다는 이유이다. 이후 경고 영상을 달고 서비스를 재개했다고는 한다.
작가 마가렛 미첼은 남부의 상징적 도시 애틀랜타에서 태어나 평생 살면서 그곳에 묻혔다. 남북전쟁(1861~1865) 45년 뒤에 태어나 남북전쟁 화제 속에 자란 그녀는 승자인 북부가 아닌 남부 입장에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애틀랜타 저널 일요매거진 기자 생활을 4년 만에 접고 남편 존 마시의 격려로 이 글을 10년 동안 썼다.
사춘기가 막 시작된 시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밤새워 읽고도 일주일 동안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로부터 50년 후인 얼마 전, 난 마가렛 미첼 하우스와 묘소를 찾아갔다.
애틀랜타 잭슨하잇츠 공항에 내리자마자 피치트리 숙소에 체크인한 후 바로 마가렛 미첼 하우스를 찾아갔다. 그런데 문을 닫았다. 작년에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코로나로 문을 닫지만 2023년 오픈한다고 되어있었는데, 오기 직전에 바빠서 확인을 못했었다.
저택 한쪽이 박물관, 다른 한쪽이 하우스다. 1899년 지어진 마가렛의 생가는 1919년 19가구짜리 아파트로 개조되었고 마가렛은 1층 1호에 살면서 1925~1932년 약 7년동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썼다. 미드타운 시내에 위치한 이곳은 한적하니 오가는 사람이 없다. 그녀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피치트리 스트릿 도로에는 무심한 차량들만 물밀 듯 오갈 뿐이다.
그래, 마가렛이 작품을 쓴 방과 가구는 1994년 화재로 전소되었다지, 새로 지은 집이니 작가의 체취는 찾을 수 없을 거야, 그렇다면 진짜를 보러가자 했다. 뉴욕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 거리를 오가는 흑인도, 흑인 버스 운전기사도, 모두 마가렛 미첼을 잘 모른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마가렛 미첼 묘소는 석물 가운데 남편 성 ‘March’가 새겨져 있다. 왼쪽이 마가렛, 오른쪽이 남편 묘소다. ‘1900년 11월8일 조지아 애틀랜타에서 태어나 1949년 8월16일 죽었다.’ 하, 묘비명이 이리 간단할 수가. 석물 위에 참배자가 두고 간 페니, 자잘한 돌멩이들이 놓여있다. 나도 바나나와 사과 하나씩 올려놓았다.
마가렛은 1941~1945년 적십자 요원으로 봉사했고 50명의 흑인 의대생에게 익명으로 장학금을 내놓았다. 대학생 시절 흑인학생과 나란히 앉아서 수업을 듣지 않았다. 시대 상황이 그랬다.
오늘날, 흑인들이 여전히 인종차별을 받고 있지만 이민 역사가 짧은 아시아계 미국인들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폭행 및 묻지마 살해 등으로 인종차별을 받고있다. ‘더 이상은 안된다, 아시아계의 목숨도 중요하다.’고 외친다. 하지만 흑인이 가하는 인종차별은 이슈화되지 못한다.
이것도 미국의 역사이다. 과거가 이해되어야 현재를 알고 현재는 과거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한다. 19세기 노예제도가 살아있던 시대상은 미국의 역사이다. 과거를 다룬 모든 소설, 드라마, 영화가 인종차별, 반평등주의, 신분차별주의 등등의 경고 사인을 붙이고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스스로 판단하게 해야 한다.
예로써 왕비와 후궁들의 암투, 양반과 상놈의 주종관계 등 모든 한국 사극이 방영 불가나 경고 사인을 붙이는 모습은 좀 그렇다. 이미, 애틀랜타 거리의 시민들은 마가렛 미첼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관심이 없다. 멀리서 온 관광객만 속절없이 찾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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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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